당신이 지난 몇 년간 북미와 영국의 어떤 지역에서건 집회에 참여해봤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이런 것들에 반대한다(Down With This Sort of Thing)”라는 손팻말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기운 빠지는 구호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이 슬로건은 1995~1998년 방영된 아일랜드의 인기 시트콤 “테드 신부(Father Ted)”에서 나온 것입니다. 극 중 테드 신부는 조수 두걸과 함께 교황이 신성모독이라 비난한 영화에 항의하라는 지시를 받고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극장으로 파견됩니다. 현장에서 이들은 사안에 대한 열정 부족을 그대로 드러내는 무기력한 구호 “이런 거 이제 그만(Down With This Sort of Thing)”과 “좀 조심해주세요(Careful Now)”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고, 이는 불멸의 시위 구호로 남게 되었죠.
제작자 아서 매튜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988년 작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둘러싼 논란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장면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시위 구호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처음 떠오르는 문구를 대충 적었다고요. 시큰둥한 태도로 시위 현장에 간 테드 신부도 실제로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이 장면은 완곡어법, 그리고 남들 앞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유독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성향과 맞아 떨어져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내가 이 사안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시위가 끝나면 술집에 가서 술한잔 할 거지 지루한 회의자리까지는 따라가지 않을 거다, 라는 정서랄까요.” 매튜스의 설명입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시위 참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도 거리로 불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샤이(shy) 집회 참가자”들은 자신의 불만을 아이러닉한 구호에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내성적인 사람들도 나왔습니다(So Bad, Even Introverts Are Here)”, “보통은 이런 거 들고나오지 않는데, 해도 너무하네요(Not Usually a Sign Guy but Geez)”와 같이 성의 없고 유머러스한 구호들은 현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를 보여주는 지표와도 같습니다. “테드 신부”의 시위 구호는 그런 의미에서 선구자적인 문구였습니다. 단순히 집회에 나와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항의의 표시가 될 수 있음을 일찍이 보여주었다고나 할까요.
“테드 신부”의 작가 그러햄 리너핸은 최근 사태 속에서 극 중 장면과 구호가 제2의 생명을 얻어 기쁘다고 말합니다. “맥 빠진 시위 참여자”라는 조크를 효과적인 시위 도구로 되살려낸 요즘 시위 참여자들의 기지가 자랑스럽다는 것이죠. 하지만 브렉시트와 트럼프 이후로 이제는 상황이 정말로 심각해지다 보니, 유머러스한 구호들이 지나치게 태평스럽게 느껴진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는 어떤 시위에서건 유머가 나름의 역할을 하겠지만, 사안이 계속해서 심각해지고 사람들의 분노가 더 커지면 이런 종류의 구호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아직은 “테드와 두걸의 성의 없는 구호”가 여전히 시위 현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요. (이코노미스트)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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