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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상황, “상대적 박탈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바마케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론이 부정적인 여론보다 높아진 것입니다. 최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이 공동 시행한 여론 조사와 폭스뉴스의 여론 조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고, 뉴욕타임스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보도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분위기가 바뀐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바마케어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여론이 서서히 기울었을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민주당의 홍보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배경과 더불어 작용한 강력한 요인을 하나 꼽는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들 수 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누려 마땅한 것을 박탈당한 기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과거에 가졌던 것, 당연히 가지리라 기대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죠. 미국에서 일어난 여러 폭발적인 정치 현상들(오바마케어 열풍, 반트럼프 시위, 심지어는 트럼프의 당선마저도)은 이런 상대적 박탈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치학자 시어도어 거(Theodore Gurr)는 1970년 저서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정치적 반란의 주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 간의 격차가 불만을 낳고, 이 불만이 “집단적인 폭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처한 기본적인 상태”라는 것이죠.

식당 종업원 권익 운동가인 사루 자야라만 씨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오바마케어가 생기기 전에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종업원이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보험을 가졌다가 다시 빼앗기면 아무것도 없었을 때보다 더 끔찍하죠.”

물론 오바마케어에 대한 여론 변화를 “집단적 폭력” 상황이라고 부르기는 시기상조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막상 의료보험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그 두려움이 오바마케어라는 정책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보다 커지는 것이죠.

사람들이 자기 몫을 빼앗기면 화를 낸다는 것이 엄청나게 획기적인 사실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 대해 우아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성행진이 왜 많은 사람의 호응을 끌어냈는지에 관해서도 비슷한 설명이 나왔죠. 에밀리 칼라 게이드는 여성들이 새로운 사안이 있어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다 생각했던 가치와 보호망들이 위협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백인 남성, 특히 경제력을 상실한 백인 남성들은 수년간 박탈감을 느껴왔습니다. 2013년, 저서 “성난 백인 남성(Angry White Men)”을 펴낸 마이클 키멜은 “혁명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잃을 것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움을 느낄 때 일으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키멜은 이것이 트럼프 당선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트럼프가 유세 과정에서 자동차 공장과 광산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미국이 잃은 기회들을 되찾아 “다시 위대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죠.

이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전혀 다른 집단이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여성행진에 나섰던 여성들은 낙태할 권리를 잃을 두려움, 오랜 기간에 걸쳐 쟁취해낸 존중과 사회적 입지를 잃을 두려움 때문에 거리로 나선 것입니다. 미국이 한때 여성을 추행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사실에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죠. 트럼프의 입국 금지령에 저항하는 이민자와 무슬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저항에 나선다는 뜻은 아닙니다. 입국 금지령 발표에 무슬림도 아니고 이민자도 아니지만 공항으로 달려나갔던 사람들처럼, 여성행진에 동참한 남성들처럼, 많은 사람이 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도덕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목소리는 민주당 정치인으로도 향하고 있습니다. 최근 집회 구호 중에는 민주당 상하원 원내대표들을 겨냥한 구호(당신들이 할 일을 해라!)도 있었죠. 또 상대적 박탈감은 샌더스 지지자와 클린턴 지지자 간 어마어마한 반목을 완화하는 데도 나름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무섭게 대립하던 두 집단은 선거에서 패배하자 인종주의 등의 주제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며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죠.

상대적 박탈감은 기대감과 그 기대가 충족되느냐 마느냐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정치인은 공약을 내걸고, 그 공약에 따른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게임에 참여하고 있죠. 트럼프의 정치적 성공은 어쩌면 그가 이 게임에 많은 것을 걸고 승리한 데서 비롯된 것일지 모릅니다.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당신은 부당하게 무시되고 있고, 한때 가졌던 것을 잃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놓고, 끊임없이 기득권을 공격하는 전략을 폈죠.

이제 권력은 그의 손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취임 2주 간 그는 엄청난 실행력을 과시했죠. 하지만 4년은 긴 시간입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를 뽑은 사람들의 상황이 실질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돌아설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동안 모두가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지지자들의 기대감을 높인 바 있습니다. (동료 공화당원들은 이 말을 축소하기에 바빴지만요.) 이제 대통령과 공화당은 오바마케어에 대한 여론이 갑자기 달라진 상황에서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입장에 놓였습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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