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균은 환자의 분변이나 배설물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고 퍼집니다. 1854년 역학자 존 스노는 런던 빈민가의 콜레라 환자의 분포도를 그려가며 추적한 끝에 오물통 근처의 한 우물을 콜레라균의 근원지로 밝혀냈습니다. 이어 콜레라로 사망한 아기의 기저귀를 그 아기의 엄마가 그 우물에서 빨았던 사실이 밝혀졌고, 런던시는 즉각 그 우물을 폐쇄해 콜레라의 전염을 막았습니다.
중국, 인도,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 깨끗한 식수가 부족한 채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잠재적으로 콜레라의 위협에 노출돼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콜레라에 맞설 수 있는 더욱 강력한 무기인 값싸고 효과적인 백신 개발에 오랫동안 헌신해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백신을 확보했습니다.
다양한 콜레라 백신이 19세기부터 개발됐지만, 모두 과학적으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1970년 국제 설사병 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 그 당시 존재하던 백신은 콜레라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밝혀집니다.
1980년대 스웨덴 과학자인 얀 홀름그렌 박사가 개발한 경구 백신(주사가 아니라 먹는 백신)은 85%의 예방 효과를 보였지만, 우선 개발비용이 너무 비쌌고 위산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성분의 완충액을 상당량 함께 복용해야 하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완충액을 콜레라에 취약한 지역까지 실어나르는 것부터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홀름그렌 박사의 백신은 탄산음료처럼 거품이 나는 액체였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탄산음료를 마셔본 적이 없는 가난한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은 그 백신을 입에 대는 즉시 재채기와 함께 약을 다 뱉어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1986년 베트남의 과학자인 당 덕 트라치 박사가 완충액이 필요 없는 백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홀름그렌 박사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홀름그렌 박사와 국제 설사병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미국인 백신 전문가 존 클레멘스 박사는 백신의 성분을 비롯한 제조법을 알려줬습니다. 현재 국제 설사병 연구소의 사무총장인 클레멘스 박사는 당시 이를 마지못해 알려준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그 백신은 어디 내세울 만한 게 못 됐거든요. 그저 세균에 감염된 세포를 켜켜이 쌓아둔, 파스퇴르가 백신을 발견했을 때 쓴 기술을 그대로 접목한 수준에 불과했달까요?”
베트남은 당시만 해도 다른 나라와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폐쇄 국가였습니다. 당 박사와도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런데 7년이 지난 뒤 당 박사가 새로운 백신을 개발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옵니다. 베트남 중부의 도시 후에의 주민 7만 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한 결과 백신의 예방 효과는 60% 정도였습니다.
홀름그렌 박사가 개발한 백신보다 예방 효과는 낮았지만, 무엇보다 한 알을 만드는 데 드는 돈이 25센트밖에 안 됐습니다. 백신 접종을 통해 면역 체계를 구축한 공동체에는 전염병이 잘 퍼지지 않습니다.
1997년 베트남은 세계 최초로 콜레라가 창궐하지 않을 때도 국민에게 상시 콜레라 접종을 권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베트남 외에 콜레라 예방접종을 전 국민에게 권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2014년 연구 결과를 보면 베트남의 콜레라 환자는 이후 크게 줄었습니다. 콜레라 백신의 효과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후에 시에서는 2003년 이후 콜레라 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당 박사는 전통적인 임상 시험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베트남의 백신 제조공장이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해 유엔 산하 기구들이 이 새로운 백신을 조달해 콜레라가 빈발하는 지역에 보급할 길이 막혔습니다.
콜레라 백신을 본격적으로 개발해 생산하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조차 분명하지 않자, 어느 제약 업체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당 박사가 개발한 백신은 제약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죽음의 계곡(the valley of death)”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계곡이란 실험실에서 효과를 입증한 신약 성분이 여러 차례 임상을 비롯한 실제 개발 단계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하거나 아예 투자조차 받지 못해 상용화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1999년, 클레멘스 박사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한 곳은 당시 갓 출범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었습니다.
“그때 아마 거의 어디 건물 지하실 정도 되는 곳에서 재단 간판도 아직 달지 않은 상황이었을 거예요. 빌 게이츠 씨로부터 편지를 하나 받았었죠.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소리지만 편지 내용은 대략 이랬어요. “제가 4천만 달러를 쓸 생각이 있는데요, 가끔 (의료 관련) 연구나 보고서를 좀 보내주시겠어요?” 그 편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콜레라 백신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클레멘스 박사는 빌 게이츠가 지원한 4천만 달러로 당 박사가 개발한 백신을 정식으로 다시 연구했습니다. 인도 콜카타에서 임상 시험을 성공리에 진행했고, 세계보건기구의 의약품 제조 공정 기준을 충족하는 제약 회사 샨타 바이오테크닉스를 세웠습니다.
마침내 샨콜(Shanchol)이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병에 담긴 물약이 2009년 성공적으로 생산됐습니다. 한 병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2달러가 채 안 됐고, 같이 복용해야 하는 완충액도 없었습니다. 백신 개발은 완료됐지만, 생각보다 수요가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세계보건기구의 반응도 미지근했습니다.
제약회사들은 상품성이 높은 약품에 대대적인 광고비를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콜레라 백신은 그만한 상품성이 없었습니다. 또한, 콜레라는 치료 시설만 잘 갖춰놓으면 환자를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이 됐습니다. 굳이 예방접종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없지 않았던 셈이죠. 2009년 짐바브웨에서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도, 2010년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창궐한 초기에도 새로운 백신은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샨콜은 여전히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매출은커녕 승인도 받지 못한 샨콜에 명운을 걸고 있던 샨타 바이오테크닉스는 공장을 새로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87년부터 아이티에서 의료 봉사를 해온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의 창립자 폴 파머 박사가 이 난국을 타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의 소극적인 태도를 공개적으로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의 승인을 받은 뒤 콜레라 백신 샨콜은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에는 백신 상비계획이 시행됐고,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Alliance)은 1억 1천5백만 달러를 들여 샨콜 6백만 병을 비축하기로 합니다.
현재 아이티를 포함해 콜레라가 발발한 이라크, 남수단 등지에서 백신이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에는 한국 제약회사가 개발한 2세대 콜레라 백신 유비콜(Euvichol)이 승인됐습니다.
방글라데시 제약 업체도 박스콜(Vaxchol)이라는 이름의 자체 백신 개발에 한창입니다. 국제 설사병 연구소의 피르다우시 콰드리 박사는 2억 병 정도를 생산해 전국에 비축해두면, 콜레라를 완전히 정복하는 일도 꿈이 아니라고 분석했습니다.
마침내 인류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에 대한 면역 체계를 평상시에 구축할 수 있는 성공적인 백신을 손에 넣었지만, 아직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콜레라의 위험에 노출된 인구는 총 14억 명에 이릅니다. 이들 모두에게 백신을 보급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어마어마합니다. 또한, 설사병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균이 반드시 콜레라균인 것도 아닙니다.
이 연구의 대부분을 지원한 빌 게이츠마저 “콜레라 백신을 개발하긴 했는데,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보급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백신의 필요성을 알리고 국제적인 승인과 조직적인 보급 등 일련의 과정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클레멘스 박사는 아쉬움과 냉소가 뒤섞인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저희가 엉터리 과학자는 아마도 아닐 겁니다. 다만, 이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떳떳이 말하긴 어렵다는 거죠. 만약 콜레라가 미국 어린이들에게 만연한 질병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소아마비 백신이 개발된 것처럼 대단히 빨리, 순식간에 개발과 생산, 홍보, 보급이 진행되지 않았을까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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