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무슬림 입국 금지 조치에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불거진 토요일, 대부분의 백악관 비서관들이 알파파 클럽 만찬 행사에 참석했지만, 한 사람만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바로 백악관 수석 고문인 스티브 배넌이었죠.
브레이브바트뉴스 출신의 배넌은 트럼프 취임 후 불과 열흘 만에 백악관 내 권력 기반을 확실히 다졌습니다. 레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도 배넌의 그림자에 가려졌을 정도죠. 트럼프 정부의 초기 방향을 잡아가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또 다른 대통령 자문 스티븐 밀러와 함께 트럼프 부상 전부터 이번 정부의 정치적, 이념적 틀을 잡은 인물입니다. 브레이트바트뉴스는 공화당 주류가 이민, 무역 등의 사안에서 미국 노동자를 배신했다는 프레임을 전파해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깔았습니다. 이들은 또한 정부 출범 첫 주에 대통령이 어떤 문서에 언제 서명할지 로드맵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바마케어 약화, 이민 규제 강화, 연방 정부 고용 중단, 그리고 다수 무슬림 국가 출신 입국 금지까지 모두 이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조치입니다.
한 관계자는 배넌이 “대선 유세 때 말했던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샀다고 전합니다. 배넌은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로 이미 대통령이 부하라기보다 동료로 인식하는 인물이며,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공화당 주류의 적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해 입지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는 정권 인수기에 실무급 인선이나 회의를 멀리하면서 내각 구성에 집중했습니다.
다른 비서진과 달리 배넌은 TV 출연이나 만찬 참석을 꺼리는 편입니다. 그는 입이 거칠고 옷도 여느 백악관 근무자들과 달리 캐주얼하게 입습니다. 큰 회의에서는 슬쩍 비켜나 있으면서 대통령과 사적으로 만나는 것을 선호합니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배넌이 미국 대중의 관심사와 트럼프가 승리한 이유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의견이 일치할 때가 많다고 전합니다.
트럼프 반대 진영이 배넌의 백악관 입성을 우려했던 이유는 대안우파(alt-right), 백인 민족주의 성향의 브레이트바트뉴스를 이끌었던 경력 때문입니다. 반면 배넌 본인과 그의 지인들은 그가 인종주의자나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죠.
배넌의 오른팔인 밀러는 유세 기간 내내 트럼프의 옆을 지키며 트럼프 등장 전 소개 멘트를 맡았던 인물입니다. 트럼프의 취임사도 이 두 사람의 작품이죠. 언론에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라고 조언한 것도 배넌과 밀러입니다.
두 사람은 종종 공화당이나 백악관 비서진으로부터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삽니다. 이들의 정책이 면밀한 계획 없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집행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백악관 내부에서 들려옵니다. 한편 관계자에 따르면 스티브 밀러는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것을 가져가서 대통령이 하고 싶어 할 만한 말로 정리하는” 재주를 통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넌과 밀러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밀러는 현 법무부 장관 지명자인 제프 세션스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의 보좌관이었죠. 이들은 당시 공화당이 라틴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추진하고 있던 이민법 개정안을 무산시키는 작전에 함께 임했습니다. 당시 밀러는 브레이트바트뉴스 측에 개정안 통과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작성된 브레이트바트뉴스의 기사들은 공화당 주류와 기득권 엘리트들이 미국 노동자들을 배신하고 값싼 외국인 노동력을 수입하려 한다는 트럼프 캠프 핵심 주장의 전신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민법 개정안은 결국 상정되지도 못한 채 묻히고 맙니다.
일요일에 배넌대통령을멈춰라 해시태그(#StopPresidentBannon)가 등장한 것은 무슬림 입국 금지 조치와 배넌의 국가안보회의 입성을 동시에 규탄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트럼프 반대 진영에서는 국가안보 분야에 있어 아무런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배넌이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일원이 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 당시 “대통령의 브레인”으로 불리며 대통령의 의사 결정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칼 로브 전 고문은 부시 대통령의 저지로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고문을 지냈던 데이비드 액설로드 역시 가끔 상황실에서 회의를 참관했지만, 입장을 거부당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의 동지인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정치 고문이 국가 안보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예를 찾아내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습니다. 깅그리치는 “대통령이 배넌의 직관과 판단력을 신뢰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계획”이라며, 배넌이 해군 장교를 지낸 경력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군 장교 경력을 지닌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의견은 다릅니다. 매케인은 정치 자문을 국가안전보장회의 일원으로 삼고 합참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은 지나친 조치라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폴리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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