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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에게 “당신의 가치관을 형성한 역사적인 사건”을 물었습니다.

지난달 선거에서 드러난 미국 민심은 상당히 양극단으로 갈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많은 미국인이 뜻을 같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이, 지지 정당, 성별과 관계없이 미국인들은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미국 현대사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자신의 가치관을 바꾼 역사적인 사건으로 꼽았습니다. 퓨리서치 센터와 A+E 네트워크 히스토리는 최근 미국인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와 미국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6%는 9.11 테러를 꼽았습니다.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압도적인 수치였습니다. 퓨리서치 센터의 클라우디아 딘 부소장은 이번 조사를 이끌었습니다.

“평소에 사람들이 역사에 깊은 관심을 두지는 않죠. 하지만 현재 일어나는 사회적인 논쟁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각각의 사건이 영향을 미친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9.11 테러를 가장 역사적인 사건으로 꼽은 응답자는 전체의 76%로 압도적인 1위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40%로 2위에 올랐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 케네디 대통령 암살, 베트남 전쟁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세대에 따라 결정적인 역사적 장면에 관한 의견이 다르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세대에도 그 세대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일어난 특정 사건에 영향을 받아 세워진 고유의 정체성이 있다고 딘 부소장은 분석했습니다.

9.11 테러는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역사적인 장면으로 꼽혔지만, 나머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세대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이른바 “조용하지만 위대한 세대”로 불리는 70대 이상의 미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들로 이에 대한 기억이 어떤 식으로든 남아있습니다. 52~70세에 해당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과 베트남 전쟁을 더 많이 꼽았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부터 X세대까지 나머지 18~51세의 응답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인종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였습니다.

9.11 테러만큼 중요한 사건이 있다고 답한 건 흑인들이 유일했습니다. 흑인 응답자의 약 60%가 9.11 테러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답했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중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도 60%에 육박했습니다. 백인이나 히스패닉에게는 9.11 테러가 단연 가장 기억나는 사건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 뒤를 잇는 세 번째 역사적인 사건에서 인종별로 차이가 나타났는데, 백인에게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뜻하는 테크놀로지 혁명이, 히스패닉에게는 희생자 대부분이 히스패닉 혹은 히스패닉 계였던 올란도 총기 난사 사건이 꼽혔습니다.

지지 정당, 성별, 종교, 교육, 소득 수준 등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거나 나타나더라도 미미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각각의 사건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생각을 알려달라는 질문은 없었지만, 대신 살아오면서 미국이란 나라가 가장 자랑스럽거나 반대로 부끄러웠던, 혹은 실망스러웠던 적이 언제였는지를 묻는 문항은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척 다양했습니다. 딘 부소장은 원하는 종류의 답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거나 질문 자체가 개인사가 반영된 무수히 많은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척 중 누군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을 때가 미국인이라 자랑스러웠던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는데, 이는 사실 모두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입니다)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해 19%의 응답자가 9.11 테러 당시 미국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이 자랑스러웠다고 답한 이들은 14%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오히려 실망스러운 순간이라고 답한 이들도 11%였고, 응답자의 10%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출마와 당선이 부끄러웠다고 답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6/16 ~ 7/4 사이에 미국인 성인 남녀 2,02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전체 인구 구성비에 맞춰 각각의 답변에 가중치를 매겨 정리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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