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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원들을 공략하는 힐러리 캠프

오랜 공화당원 매튜 히긴스 씨는 얼마 전 아홉살 난 아들로부터 곤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빠, 공화당원이면 공화당 후보가 하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도 꼭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이었죠.  히긴스 씨는 일반 당원이 아닙니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언론담당 비서관을 지냈고, 맥케인과 롬니의 대선 캠프 모금에 관여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메그 휘트먼 휴렛-패커드 회장, 공화당 소속 의원 출신인 크리스 셰이스, 코니 모렐라, 부시와 레이건 정부에 참여했던 여러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트럼프 반대” 뿐 아니라 “할 수 없이 클린턴을 찍어야겠다”고 이야기하는 공화당 인사들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수요일, 클린턴 캠프는 “미국을 위해 함께(Together for America)”라는 제목의 이니셔티브를 출범했습니다. 속뜻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공화당원들”이라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다른 대선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클린턴은 90년대부터 공화당의 숙적과 같은 인물이니까요.

공화당원들의 이탈에 대해 트럼프는 그들이야말로 자신이 맞서고자 하는 미국 정계의 인사이더들이자 주류라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히긴스 씨는 사무실 벽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편지, 롬니와 찍은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로 열혈 공화당원입니다. 하지만 올해 대선 과정에서는 어린 아들의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맞아, 하지만…”하고 변명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는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나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공약, 멕시코 이민자 출신의 판사에 대한 비난 등을 아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사례로 꼽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히긴스 씨는 유권자 등록부에서 소속을 “무소속(independent)”으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번 대선을 그저 방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인들을 동원해 클린턴 캠프를 직접 찾았죠.

“원칙에도 위계가 있는 법입니다. 이를테면 클린턴의 세금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 해도, 그녀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나라를 위한 비전, 어떤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지 등에 근본적으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공화당원들의 지지 선언은 클린턴 캠프에 표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트럼프를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 수많은 공화당원들과 무당파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투표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클린턴도 펜실베니아 프라이머리 때 연설을 통해 “민주당원이건 무당파건 사려깊은 공화당원이건…”이라며 공화당원들에게 직접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클린턴이 메그 휘트먼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캠프 관계자들도 거물급 공화당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공세 없이도 공화당원들이 먼저 연락을 해온다는 것이 클린턴 캠프 관계자의 말입니다. “미국을 위해 함께” 캠페인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아직은 확실치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트럼프의 비정상적인 대선 캠프 운영 방식 덕분이라는 것이 보수 논객 메리 캐서린 햄의 설명입니다. “트럼프는 일부 공화당원들에게 기본적으로 대통령 자리에 적절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의심을 하는 사람들에게 클린턴은 크게 이념적인 어필을 할 필요조차 없죠. 날 싫어해도 괜찮아, 그래도 내가 대통령 되면 완전 미친 짓은 안 할 텐데? 그냥 모두 알고 있는 부패한 클린턴 왕국이 될 거야, 그러니 나를 뽑아줘, 라는 식으로도 충분하죠.”

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가 중도 포기하기를 원하는 공화당원이 다섯 명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클린턴이 공략할 이들이 충분한 것이죠. 진보 계열 시민단체 “미국을 위한 민주주의(Democracy for America)”의 닐 스로카 역시 클린턴이 굳이 공화당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정책을 바꾸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트럼프 측의 실책에 기대면 된다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은 클린턴이 다른 공화당원을 상대로 싸웠다면 누릴 수 없는 사치입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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