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클린턴이 탐욕과 기만의 화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화당이 클린턴을 공격하기 위해 제기했던 모든 이야기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인터넷 상의 의혹과 루머를 그대로 믿기도 하죠. 그것이 사실이 아닐 때도 마찬가집니다. 클린턴 지휘 하의 국무부와 여러 외국 정부, 클린턴 재단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피터 슈바이처(Peter Schweizer)의 신간 <클린턴 캐쉬(Clinton Cash)>는 내용 대부분이 거짓이거나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트럼프 측에서는 계속해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해명하고 물리쳐도, 클린턴을 둘러싼 각종 “스캔들”은 잦아들 기미가 없습니다. 이는 클린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빌미를 제공합니다.
조지아 주에서 의대 진학을 앞둔 트럼프 지지자 22세 우데이 사치데바 씨는 힐러리 클린턴이 “소시오패스”이고,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의 돈이며, 클린턴 재단이 그 증거라고 말합니다. 인도계 이민자의 아들인 사치데바 씨는 친구와 함께 만드는 팟캐스트를 통해 정교한 “힐러리 악마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을 둘러싼 의문의 죽음이 47건인데, 그 중 11명은 개인 경호원이고 희생자 중에는 빌 클린턴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도 있다”는 식의 주장들입니다. 그에게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는지를 묻자, 그는 스놉스닷컴(Snopes.com)을 비롯한 몇몇 출처를 댔습니다. 하지만 스놉스닷컴이 냈던 힐러리 음모론 기사는 루머를 조목조목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죠. 이 점을 지적해도 사치데바 씨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리 있나요?”
모든 트럼프 지지자들이 클린턴 음모론에 사치데바 씨와 같은 열정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들의 힐러리 혐오에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44세 퇴역군인 데니 부처 씨는 오바마가 너무 좌측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하며, 모든 사안에서 오바마와 생각을 달리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오바마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바마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다릅니다. 호감이 전혀 생기지 않아요. 법 위에 있는 사람, 우리같은 평민 위에 있는 사람 같아요.” 민주당을 지지하는 부모 아래서 자랐지만 서서히 공화당 지지 쪽으로 옮겨간 부처 씨는 힐러리 클린턴이 영부인일 때 의료 보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더욱 그녀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선출직도 아닌데 입법부처럼 선출직에게 주어지는 권한을 휘두르는 것 같았죠.”
힐러리의 “월권”을 지적하는 부처 씨의 말은 90년대식 힐러리 혐오와 어느 정도 겹칩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는 비선출직 공직자는 한두 명이 아니고, 이들의 활동이 입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제게 부처 씨의 비난이 “전형적인 영부인”의 역할을 벗어난 여성을 향한 분노로 들렸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클린턴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부처 씨 역시 그의 비호감이 젠더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의혹을 완강히 부인합니다. 또 동시에 클린턴이 젠더 이슈를 꺼내는 것에 분노를 표하죠. “딱히 이루어낸 것도 없으면서 내가 여성이니 나를 찍으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그의 분노에는 정치색이 전혀 다른 로스너 씨의 분노와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로스너 씨 역시 클린턴이 젠더 이슈를 논하는 것을 싫어하니까요. “자기가 할머니라고 내세우는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손자 있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로스너 씨의 눈에 “적절한 자리에서 적절한 말을 했던” 미셸 오바마와 달리, 힐러리 클린턴의 영부인 역할은 부적절했습니다. “미셸 오바마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매우 헌신적이죠. 아이가 학기 중간에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되도록 임기가 끝난 후에도 워싱턴에 머물겠다고 했고요. 그런 게 진짜 대단한 거죠.” 로스너 씨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언제나 자신의 정치색에 좌우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클린턴을 싫어하는 이유가 달라진 까닭은 어쩌면 클린턴 스스로 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처음 영부인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진보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1994년 중간선거에서 역사적인 패배를 맛본 뒤 그녀는 지나치게 조심하고, 과도하게 타협하는 캐릭터로 점차 변모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힐러리의 원래 모습을 싫어했지만, 그녀가 비난에 맞추어 변화하자 이제는 다른 이유를 들어 그녀를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끈질기게 이어지는 힐러리 혐오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인의 카리스마, 혹은 그 부재 역시 비호감의 원인일 수도 있죠.
그리고 그것이 성별과 관계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미국인들은 목소리 크고 야망 넘치는 여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레베카 트레이스터(Rebecca Traister)는 최근 “뉴욕”지에 “여성이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카리스마를 보였을 때 이것이 대중에 어필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썼습니다. 많은 이들이 클린턴을 비난하면서 그녀를 솔직하고 진정성 있어 보이는 엘리자베스 워런과 비교하곤 하지만, 워런도 상원의원 선거전을 치를 때는 정직하지 못하고 비호감인 인물로 그려졌었다면서 말이죠. 이는 큰 그림에 들어맞는 이야기입니다. 셰릴 샌드버그의 저서 “린인”의 수석 연구자였던 스탠포드대학의 사회학자 마리앤 쿠퍼(Marianne Cooper)에 따르면, 문화적으로 남성적이라 여겨지는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은 전형적으로 “거칠고, 교활하며, 신뢰할 수 없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쿠퍼는 클린턴이 겪고 있는 일을 일상 속의 수 많은 여성들 역시 겪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여자 일은 잘하는데 난 좀 비호감이더라, 하는 식의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큰 그림을 보면 분명히 뚜렷한 편견의 패턴이 보입니다.”
열혈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서는 여성혐오를 숨기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는 르윈스키 스캔들와 오럴섹스를 연상시키는 문구(Hillary Sucks but Not Like Monica), 힐러리를 “암캐”로, 트럼프의 이름을 동사를 활용한 문구(Trump that Bitch)를 적어넣은 티셔츠가 등장했고, 클린턴을 “왕좌의 게임”에서 몰락하는 악녀 세르세이 라니스터로 묘사한 코스프레도 등장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 미국인이 이 정도로 극단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힐러리의 비호감에 여성에 대한 편견 이상의 무언가가 이유로 작용한다고 생각하죠. 매스미디어의 미스테리가 그중 하나입니다. 화면이나 사진으로 그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클린턴을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은 그녀가 TV를 통해 느낀 것보다 훨씬 호감가는 인물이라고 감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트레이스터는 클린턴의 선거 캠프를 가까이서 봤을 때 느꼈던 “능력 있고 영감을 주는 정치인 옆에 있다는 기분”이 밖으로 나오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고 썼습니다.
공화당의 전략가인 케이티 패커(Katie Packer)는 클린턴과 미트 롬니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둘 다 “정책 덕후에, 해결책 찾기를 중시하며, 사람들을 대하는 데 서툰 타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잘못될 때 사람들은 그녀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마저 계산적인 행동처럼 보이죠. 정치인에게는 정말이지 극복하기 힘든 단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트 롬니는 당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클린턴만큼 미움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시 젠더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트 롬니의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패커는 여성 컨설턴트로만 구성된 컨설팅 회사를 세우고 공화당 정치인들이 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 정치인에게 유권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연구했죠. 패커는 여성 정치인이 누리는 이점으로 첫째,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친근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 둘째, 전형적인 정치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꼽았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반대로 여성이 전형적인 정치인처럼 냉철하고 실용적인 태도를 보일 때, 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전형적인 여성, 전형적인 여성 정치인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여성 정치인이 누리는 이점조차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이 패커의 설명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그나마 클린턴에게 다행인 점이 있다면, 상대가 도널드 트럼프라는 점입니다. 패커는 이것이 힐러리에게 “복권 당첨과 같은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패커는 온건한 성향의 공화당 지지 여성 유권자들에게 클린턴이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남편인 빌 클린턴의 불륜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이죠. “이 여성들이 그나마 힐러리를 변호하고 싶은 때는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그녀가 비난받을 때입니다.” 바로 그 문제로 시비를 걸어올 유일한 공화당 정치인과 경쟁하게 되었으니 그나마 유리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브라이언 그린 씨처럼 클린턴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표를 줄 사람들이 꽤 많을거라는 점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문제는 이처럼 만연한 “힐러리 혐오”가 대통령으로서의 통치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스탠포드대의 마리앤 쿠퍼는 클린턴이 일단 노골적으로 권력욕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가면, 그녀에 대한 반감도 줄어들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는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 결과도 어느정도 뒷받침하는 가설인데, 그녀가 상원의원이나 대통령 후보에 도전할 때는 비호감도가 높아졌다가도 실제로 의정 활동을 하는 중에나 국무장관을 지내던 시절에는 비호감도가 낮아졌습니다.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면서 한층 더 미움을 사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실제로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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