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힐러리를 싫어하는 정서”는 그녀가 영부인이었던 90년대부터 칼럼의 소재가 될 만큼 팽배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지난 20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죠. 힐러리 클린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꾸준히 있었으며, 근래 들어 이렇게나 미움받은 민주당 대선 후보는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미움받는 이유를 살펴보면 예전과 지금이 다릅니다. 공화당에서 연설문을 썼던 페기 누넌(Peggy Noonan)은 클린턴을 “본능적으로 정치적이며, 이로 인해 신경을 거슬린다”고 표현하며, 정치 경력 내내 자신의 정치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은연중에 끊임없이 드러내 왔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는 90년대에 종종 보였던 “성녀 힐러리”와 같은 비아냥, 정치적 야망이 너무 커 보인다는 비난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오늘날 클린턴이 지나친 도덕주의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번에 저는 트럼프 지지자, 전통적 보수층, 샌더스 지지자는 물론 마지못해 클린턴에게 표를 준 사람들까지 다양한 미국인들을 만나 클린턴을 싫어하는 이유를 물었는데, 이들 눈에 비친 클린턴은 부패한 냉소주의자, 거대권력에 가까웠죠. 자신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도덕군자와는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최근 이루어진 설문조사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을 왜 싫어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4%가 “클린턴은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말을 바꾼다”에 동의했고, 82%는 그녀가 부패했다는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제가 만나본 사람들의 의견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시카고 교외에 사는 49세의 회계사 브라이언 그린 씨는 90년대에 보수였고 클린턴 부부를 싫어했습니다. “자신이 있는 자리를 너무 당연히 여기고 너무 잘난 체하는 느낌이었어요. 카리스마 없는 빌 클린턴 같았달까요?” 그린 씨는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보수파에 실망했고, 2004년에는 하워드 딘을 지지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입장이 달라졌지만 힐러리 클린턴을 싫어하는 마음만은 그대로입니다. 이번 경선에서도 샌더스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해 클린턴을 찍기는 했지만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공화당이 “제정신인” 후보를 내기만 했어도 다시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을 거라고요.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는 로봇처럼 느껴져요. 이번 경선 기간 좌클릭을 하며 진보주의자 행세를 한 것도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샌더스 돌풍을 의식한 짓인 것 같고요.” 그린 씨는 호감도보다는 정책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저 사람을 앞으로 TV에서 4년, 8년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 털어놨습니다.
한편, 클린턴의 전적과 정책을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워싱턴DC에 사는 31세의 시장분석가 마르셀라 애버딘 씨의 아버지는 팔레스타인 출신입니다. 애버딘 씨는 클린턴의 강경한 중동 정책과 친이스라엘 성향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클린턴이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 정치인이 그렇죠. 제가 클린턴을 싫어하는 건 정책 때문이에요.” 애버딘 씨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에게 표를 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비호감도는 정책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LA에 사는 작곡가이자 열성 샌더스 지지자인 78세 마고 구라이언 로스너 씨는 92년 대선을 계기로 힐러리 클린턴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로펌 경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집에서 쿠키 굽고 차 마시는 대신 경력을 택했다”고 말한 것을 듣고 거부감을 느꼈다고요. “집에서 쿠키를 굽고 아이를 키우는 보통 여자들을 무시한 거죠.” 로스너 씨는 가정주부가 아니므로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다니 멍청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똑똑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서는 힐러리의 노선도 문제입니다.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동성결혼도 화제가 되기 전까지는 지지하지 않았죠. 이메일 문제에 대해서 진술을 거부한 것도 말이 안 되고, 네타냐후와의 우정도 마음에 안 들어요. 대형은행의 기부금을 받는 것도 문제고, 보편적 의료 복지에 반대하는 것도 문제예요. 이런 점을 다 고려해볼 때 힐러리는 민주당원보다 공화당원에 오히려 가깝죠. 공화당원에게 제 표를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로스너 씨는 이라크 전쟁이나 의료 보험, 금융권과 관련해 힐러리와 같은 입장인 조 바이든에 대해서 우호적입니다. 바이든에게는 “어딘가 마음에 와 닿는 인간미가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입니다.
클린턴에게 인간미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녀도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식료품점의 유제품 코너에서 일하는 49세 민디 가드너 씨는 “클린턴은 나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 같다”며, 자신이 그녀에게 득이 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니 자신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가드너 씨는 92년에 빌 클린턴에게 막연히 긍정적인 감정이 있었지만, 2008년에는 맥케인 후보를, 이번에는 샌더스를 지지합니다. 가드너 씨에게 힐러리 클린턴은 오늘날 미국 경제 상황을 만든 주범이자,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친기업주의자입니다. “12살 때부터 돈을 벌었지만, 그때보다 지금 벌이가 오히려 더 신통치 않은 느낌이에요.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해도 아이들 키우기가 빠듯하죠. 클린턴의 친구들이 모두 기업가에 부자들인데 자기 친구들에게 해가 되는 짓을 할 리 없잖아요.” 최저임금을 시간당 12달러로 올리겠다는 클린턴의 공약에 관해 묻자, 정책 자체는 지지하나 클린턴이 약속을 지킬 리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인 사람인걸요.” (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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