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신디 로퍼가 “돈 있으면 모든 게 바뀐다(money changes everything)”고 노래를 부른 게 벌써 30년도 더 전인 1983년입니다. 학계에서는 뒤늦게 이 명제를 증명하는 연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에모리대학교의 에밀리 비앙키(Emily Bianchi)와 미네소타대학교의 캐슬린 보스(Kathleen Vohs)는 최근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비앙키와 보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소위 사회생활을 하고 누구와 어울리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가계 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아지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시간을 덜 쓰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 보냅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가족, 이웃보다는 친구들과 더 자주, 더 많이 어울립니다.
돈이 더 많이 생기거나 돈을 더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더욱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덜 신경쓴다는 연구는 이전에도 많이 발표됐습니다. 이런 경향은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 실험실에서 진행한 사회 실험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돈에 노출되고 돈에 더 많이 신경을 쓰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듭니다. 부자들은 대체로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들과 얽히는 것보다 혼자 일하고 혼자 지내는 걸 선호합니다.
연구진은 종합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 GSS)에 모인 응답자 3만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가계 소득과 사회생활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봤습니다. 조사에 포함된 문항 가운데는 친척, 이웃, 혹은 친구들과 각각 저녁시간에 얼마나 어울려 지내는지를 묻는 문항이 있습니다. 연령, 인종, 성별, 결혼 여부, 가족 형태, 살고 있는 이웃의 크기, 노동 시간 등 돈이 얼마나 있는지를 제외한 다른 특징은 모두 통제했습니다.
첫째로, 소득이 높을수록 남들과 어울리는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 자체가 짧아졌습니다. 연소득이 5천 달러인 개인보다 가계소득이 13만1천 달러가 넘는 부유한 가정 출신의 개인은 1년에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저녁이 평균 6.4일 적었습니다.
그냥 사회생활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부자들은 어울리는 사람도 달랐습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친지나 이웃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짧았고, 친구나 동료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었었습니다.”
가계소득 하위 25%와 비교해보면, 상위 25% 사람들은 가족과 1년에 4.6일, 이웃과는 8.3일을 덜 어울립니다. 반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상위 25% 사람들이 하위 25% 사람들보다 1년에 5.2일 더 깁니다. 이 경향은 소득 스펙트럼을 따라 더욱 가파르게 나타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연구를 이끈 비앙키와 보스는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직접적인 도움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언가 큰 지출을 해야 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잔디 깎는 일이나 급하게 고장난 세탁기를 고쳐야 할 때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깁니다. 때때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건 평소에 관계를 잘 맺어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싼 TV를 살 때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던 자식이라면 그러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완전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런 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잔디 깎는 일이나 세탁기 고치는 일은 돈을 주고 사람을 써서 하면 되는 일입니다. 아니면 세탁기 같은 건 아예 고장나면 새 거 하나 사면 그만일 수도 있고요. 부자로 산다는 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고 싶을 때 어울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이 뜻이 맞고 생각이 비슷하며 가치를 공유하는 친구나 동료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앙키와 보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돈이 많아지면 도움을 받을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 어울리고 싶은 사람과 사회적인 관계가 강화된다.”
이미 전반적으로 사회적인 관계가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자신이 친한 친구가 없고, 가족 안에서도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1985년과 비교했을 때 2004년에 세 배나 늘어났습니다. 긴밀한 관계를 맺고 돌아가는 사회적 공동체도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로버트 퍼트남 교수는 이런 상황을 “나홀로 볼링(Bowling Alone)”이라 불렀고, 그의 책은 사회과학의 고전이 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모두의 살림살이가 나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물가상승을 감안하더라도 가계소득은 세계 2차대전 이후 훨씬 높아졌습니다. 지난 10년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지만요. 만약 비앙키와 보스가 발견한 소득과 사회생활의 상관관계가 사실이라면, 전반적으로 모두가 돈이 많아져서 그만큼 사회생활을 덜 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합니다.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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