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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신임 대법관에 메릭 갈랜드 지명

옮긴이: 한 달 전 뉴스페퍼민트는 스칼리아 대법관의 후임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누구를 대법관으로 임명할지 분석한 <뉴욕타임스>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이 기사를 토대로 <한겨레21>에 글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장 메릭 갈랜드(Merrick Garland)를 대법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제 공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원으로 넘어갔습니다. 갈랜드 판사의 대법관 임명 배경을 짚은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113번째 대법관 후보로 현재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장인 메릭 갈랜드를 임명했습니다. 종신직인 대법관 후보로 임명된 갈랜드 판사는 상원의 인준 절차를 통과하면 대법관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륜과 실력은 물론 성향에서도 중도 성향으로 공화당과 보수 세력으로부터도 초당적인 지지를 받아 온 갈랜드 판사를 임명함으로써 공화당을 압박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16일 오전, 백악관 안뜰인 로즈가든에서 갈랜드 판사를 가족과 활동가, 백악관 임직원들에게 소개하며, 갈랜드 판사는 지난달 숨진 고(故)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의 빈자리를 메울 적임자라고 임명 이유를 밝혔습니다.

(갈랜드 판사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법조인 가운데 한 분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품위와 겸손, 진실함, 공명정대함, 탁월함을 두루 갖춘 갈랜드 판사는 오랫동안 검사, 판사로 공익을 위해 복무했습니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갈랜드 판사가 대법관의 역할을 당장에라도 훌륭히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대법관에 최종 임명되려면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합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앞서 여러 차례 임기 마지막 해인 오바마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다음과 같은 경고를 덧붙였습니다.

(대법관) 임명 절차에도 양분된 미국 정치체제를 대입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그렇게 처리하는 건 잘못된 선택이라는 점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갈랜드 판사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받을 자격이 충분한 분입니다. 청문회조차 거부하려는 (공화당의) 움직임은 의미 없는 정치공학적 앙갚음의 악순환을 낳을 것입니다. 앞으로 민주적인 제도에 따라 진행되어야 할 절차마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공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원에 넘긴 겁니다.

공화당 상원의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최소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사청문회는 열어주십시오. 그리고 청문회 내용을 바탕으로 갈랜드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할지 말지 찬반투표를 하면 될 일입니다. 이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은 헌법이 정한 상원의 의무를 방기하는 일이고, 대법관을 비롯한 주요 인사를 임명하는 절차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겁니다.

하지만 공화당의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상원에서 대법관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갈랜드 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임명한 데 절차적인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법관 후보를 임명하는 건 헌법이 명시한 대통령의 권한입니다. 다만 마찬가지 권한을 부여받을 다음번 대통령은 갈랜드 판사와는 다른 분을 임명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칼리아 대법관의 사망으로 생겨난) 대법관 빈자리를 채우는 일은 (마침 오는 11월,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예정돼 있으니) 국민에게 간접적으로 그 뜻을 묻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정당하다는 뜻을 예전부터 거듭 밝혀왔던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명 연설 뒤 갈랜드 판사는 짧게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헌법과 법에 충실하자”는 원칙을 항상 견지해 왔으며, 상원의 인준을 통과하면 대법관으로서 따를 원칙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3월 중순 날씨치고는 예년보다 포근했던 날씨 속에 진행된 행사에 참석한 민주당 상원 지도부는 갈랜드 판사의 부인과 딸에게 따뜻한 환영 인사를 건넸습니다. 갈랜드 판사의 부인 린 갈랜드는 루스벨트, 트루먼 대통령의 백악관 법률고문이었던 새뮤엘 어빙 로젠만의 손녀로 이미 워싱턴 정가, 법조계에서 명망이 높은 인물입니다.

온건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갈랜드 판사는 오랫동안 민주, 공화 양당으로부터 초당적인 지지를 받아 온 인물입니다. 갈랜드 판사를 임명한 배경에는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을 압박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즉, 그동안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고 심지어 칭찬하기까지 했던 판사를 대법관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된다고 막아서려면 유권자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할 텐데 합리적인 이유가 별로 없다 보니 마땅한 대안 없이 덮어놓고 반대를 외치는 원칙 없는 정치인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새 대통령이 임명할 대법관 후보는 아마 갈랜드보다 더 진보적인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갈랜드 판사는 1990년대 중반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이미 한 번 정치적인 반대에 가로막혀 1년 넘게 의회의 인준을 기다렸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이오와 찰스 그래즐리 상원의원은 끝까지 갈랜드 판사의 임명에 반대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도 그래즐리 의원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은 갈랜드 판사의 임명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유는 앞서 매코넬 원내대표가 밝힌 것과 같습니다. 물러나는 대통령 말고 다음번 대통령이 스칼리아 대법관의 후임을 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고 있는 주자들은 오바마가 지명한 인물은 누가 됐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4일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공화당의 무책임한 처사를 비판했습니다.

뛰어난 법관 경력을 이어온 것으로 묘사되곤 하는 갈랜드 판사는 63살입니다. 갈랜드 판사보다 두 살 어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벌써 대법관직을 수행한 지 10년이 넘은 걸 고려하면 갈랜드 판사는 대법관 후보로 임명되기에는 다소 나이가 든 편에 속합니다. 로버츠 대법원장과 갈랜드 판사는 항소법원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고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개 대법관에 임명되는 후보는 50대 초반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법관이 종신직임을 고려하면 50대 초반에 임명된 대법관은 대개 30년 가까이 일을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부분에서도 공화당에 한발 양보함으로써 공화당을 압박했습니다. 공화당이 반대할 만한 지나치게 진보적인 인사를 고르지도 않았고, 나이도 많은 편이라 ‘오바마가 임명한 대법관’이 대법원에 존재할 시간도 공화당이 우려하는 것보다 짧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겁니다. 공화당이 반대할 명분은 더욱 약해졌습니다.

갈랜드 판사의 경력에서 1995년 오클라호마 시티 테러 사건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법무부를 대표해 사건 수사와 테러범들에 대한 기소를 지휘했습니다. 당시 갈랜드는 모두에게 대피령이 내려진 상황에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수사를 독려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백악관은 1997년 갈랜드가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될 때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아직 현역인 의원 일곱 명을 언급했습니다. 댄 코츠(인디애나), 테드 코크란(미시시피), 수잔 콜린스(메인), 오린 해치(유타), 제임스 인호페(오클라호마), 존 매케인(애리조나), 팻 로버츠(캔자스)가 그들입니다.

사실 스칼리아 대법관의 사망으로 발생한 공석을 누가 채우느냐에 따라 20년 넘게 이어진 보수 우위의 미국 대법관 사이의 이념 성향이 뒤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관 임명이 미국 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현재 여덟 명의 대법관은 이민자, 인권, 낙태, 인종, 투표권리법안, 사형 등 굵직굵직한 사안에서 대부분 예외 없이 4:4로 팽팽하게 갈려 있습니다. 새로 임명되는 대법관의 결정이 그대로 대법원의 판결이 될 가능성이 그만큼 큽니다.

갈랜드 판사가 임명되면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세 번째 대법관이 되는데, 아홉 명 중 세 명이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이라면 건강보험 개혁 법안, 이민법 개정안, 기후변화 관련 규제 등 공화당이 틈만 나면 폐기하려 드는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지켜낼 최후의 보루를 안정적으로 쌓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한 사안이 대법원까지 가려면 보통 몇 년이 걸리기 마련인데, 대법관의 이념 지형이 진보 우위라면 그만큼 현재 개혁법안이 좌초될 가능성이 작아지는 겁니다.

헌법 변호사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은 아마도 수십 년간 보수의 아성이었던 대법원을 무척 바꾸고 싶어 했을 겁니다. 그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면, 오바마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부자가 대통령일 때 임명된 대법관들이 공고하게 다져놓은 보수 우위의 대법원 지형을 뒤집은 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정치적 이념의 양극화는 미국 정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법원, 특히 대법원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공방 끝에 내려진 결정은 대개 보수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존 로버츠가 대법원장이 된 뒤 대법원은 총기와 재산권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고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들어서는 문턱을 높였으며 선거자금에 대한 규제를 해제했습니다. 노동자보다는 사용자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이 많았고, 지난해 동성 결혼은 합법화시켰지만, 인종에 따른 대학교 입학, 즉 소수 인종 배려 전형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길을 터주기도 했습니다.

보수적인 정치세력에는 그래서 이 싸움에 사활을 거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2009년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부터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일관된 목표는 오바마가 만들어내는 변화를 저지하는 일이었습니다. 대법원의 지형을 새로 짜는 일은 오바마가 만들어낼 변화 중에도 가장 심대한 일이 될 겁니다. 그만큼 이를 막으려는 쪽도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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