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화당의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유세 현장에서 부쩍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입니다. 청중을 향해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을 들어봤냐고 묻기도 하고, “침묵하는 다수”가 무시당해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제는 “침묵하는 다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트럼프 본인은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유세 현장의 지지자들은 나름대로 정의를 내립니다.
“자기 할 일 하고, 남에게 기대지 않는 사람들이죠. 조용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조르지 않아요. 사회운동가가 아니죠.” 아이오와 주 인디애놀라에 사는 패티 휴스의 말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한 만큼 받아가려는 사람들이죠. 공짜를 원하지 않지만, 빼앗기는 것도 싫어합니다. 없이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요즘 그런 일을 당하고 있어요.” 재정 보수주의나,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과 같은 단체에 대한 반감, 국정 교착상태에 대한 환멸 등을 “침묵하는 다수”의 특성으로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트럼프 덕에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침묵하는 다수”라는 개념의 역사는 꽤 깁니다. 현대적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리처드 닉슨입니다. 닉슨 시대의 보수주의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릭 펄스타인(Rick Perlstein)은 반전 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기인 1969년 11월, 베트남 전쟁을 옹호했던 닉슨의 연설을 주목합니다. “1969년 10월 15일, 미국에서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남녀노소의 시민 2백만 명이 학업과 생업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와 반전 시위에 참여했죠. 닉슨 대통령 집권 초기의 허니문 시기가 끝나고, 반전 운동이라는 것이 주류 정치로 편입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과 정부는 어떻게든 이 움직임을 ‘미국적이지 못한 것’으로 낙인 찍어 평가절하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당시 닉슨은 연설에서 “특정 시각을 가지고 거리로 나와 자신의 시각을 나라 전체에 강요하려는 소수에 의해 국가의 정책 방향이 좌지우지된다면,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했던 선서를 지키지 못하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밤, 친애하는 미국 국민, 침묵하는 다수인 바로 당신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라고 선언했죠.
펄스타인은 “침묵하는 다수”가 닉슨의 정치 철학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설명합니다. “닉슨의 머리 속에는 크게 두 종류의 미국 국민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하얀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집에 살면서 규칙을 따르고 세금을 잘 내며 시위 같은 건 하지 않는 보통의 평범한 중산층 시민이고, 다른 한 종류는 말하자면 왼쪽 사람들이었죠.” 이후, “시끄러운 소수”는 반전 운동가들 외에도 여러 집단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과격한 흑인 민권 운동가들에서부터 브라를 불태우는 페미니스트, 마약을 하는 학생, 락앤롤 밴드 등 기존 체제에 대항하는 모든 집단들을 포함하자, “소수”의 규모는 상당히 커집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의 3분의 1 이상이 65세 이상이라고 하니, 상당수는 닉슨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펄스타인은 “침묵하는 다수” 담론에 인종주의적인 면도 숨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수가 있다면 소수가 있는 거고, 미국에서 소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하죠.” 물론 2016년 트럼프 지지자들은 시대가 1960년대와는 달라졌고,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에 인종차별주의적인 뜻은 없다고 항변합니다. “트럼프의 회사를 보세요. 다양한 인종을 고용하고 있잖아요.” 웨스트드모인에 살고 있는 지지자 조지 데이비의 말입니다. 데이비는 오늘날의 “침묵하는 다수”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강요하는 문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도 그가 정치적 올바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죠.” 데이비는 처음에 특정 집단에 대한 괴롭힘 금지(anti-bullying)에서 출발한 개념이 지금은 너무 과도해져서 이젠 말 한 마디 잘못하는 것으로 직장을 잃을 수도, 고소를 당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됐고, 이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말합니다.
데이비가 말하는 “침묵하는 다수”가 닉슨의 “침묵하는 다수”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는 게 펄스타인의 설명입니다. “침묵하는 다수란 박탈감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박탈감이 공기 중에 녹아나오는 것이죠.”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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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감보다는 본능적 거부감이 맞지. PC야말로 나치즘만큼이나 끔찍한 개념이라는걸 사람들이 점점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