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두류(豆類)의 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국제기구인 UN은 세계인의 관심이 필요한 중요한 사안이나 대상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특별한 날이나 주간, 달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제도가 남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는 무려 129일이 무언가의 날로, 10개의 주가 무언가의 주간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날짜 지정 협상에 참여했던 UN 주재 EU 대표부의 한 외교관은 “특별한 날”이 너무 많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주제를 되새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특별한 날이 너무 많아지면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올해 3월 21일은 무려 다섯 가지의 주제를 기리는 날입니다. 그 중 세 가지는 2010년에 신설되었고, 가장 최근에 추가된 것은 “세계 숲의 날”입니다. 숲이 없는 국가들을 위해서 “숲과 숲이 아닌 곳에 있는 나무들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날”로 지정되었죠. 이 외교관이 문제삼는 것은 주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대부분 환경이나 건강, 평등과 같이 정말로 중요한 사안들이니까요. 다만 이런 날과 주간을 지정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무엇무엇의 날을 지정하는 것은 재정적 책임 없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딱히 논란이 되는 주제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국가의 반대에 부딪히는 일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제안한 주제가 통과되지 못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죠. 이를테면 4월 2일은 “자폐증의 날”로 방글라데시 대표부의 제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총리의 딸이 자폐증 전문가였기 때문이죠. 자폐증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다른 질환에 비해 특별히 관심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5월 9-10일은 “세계 철새의 날”입니다. 하지만 철새가 아닌 새는요? 조류는 아니지만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포유류는 덜 중요한가요? 그냥 야생 동물을 보호하자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철새의 날”을 따로 정한 것일까요? “야생 동물의 날”은 3월 3일로, 이미 달력에 새겨져 있는데 말입니다.
날짜를 정한 이상, UN 사무총장은 매년 해당 날짜마다 관련 성명을 내야 합니다. UN의 시간과 돈이 매년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물론 UN이라는 기구 자체가 어느 정도는 모두의 목소리를 평등하게 반영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곳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날”에 공평한 관심이 주어질 수는 없습니다. “중차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진실을 알 권리의 날(3월 24일)”이나 “인간 우주 비행의 날(4월 12일)”이 “세계 평화의 날(9월 21일)”만큼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무엇의 날이나 주간이 갖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각국 정부를 압박하고, 토론을 촉발시키며,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니까요. 이를테면 부탄 정부의 제안으로 “세계 행복의 날(3월 20일)”이 제정된 후,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행복”이라는 개념이 정책 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죠.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가수 페럴 윌리엄스의 노래 “해피”에 맞춰 춤을 추는 미니언들에 대한 만화 영화를 내어놓았고, 급기야 UN은 윌리엄스와의 협력을 통해 기후 변화를 주제로 “기후 변화로 우리의 미래가 위험에 처하면 우리 모두의 행복이 위협받는다”는 내용의 “해피 캠페인”을 진행해 큰 주목을 받고 엄청난 돈을 모았습니다. 그야말로 날의 취지를 잘 살린 셈이죠.
얼핏 보기에는 우스운 “세계 화장실의 날(11월 19일)”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서 기억에 남으니까요. 2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오늘날, “세계 화장실의 날”은 꼭 필요한 날일지 모릅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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