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증오와 편견의 언어를 거침없이 내뱉고 있는 오늘날의 사태는 어쩌면 미국 사회에 새로운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이들이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엄연한 현실, 즉 미국 사회에서 한때 다수였던 집단이 소수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수로서 혜택을 누려온 수많은 백인들은 이런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고, 트럼프는 이 공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두 인종주의자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자신과 자녀 세대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이들이 계속해서 트럼프의 수사에서 구원을 찾고자 하는 한, 미국의 인종 갈등은 심화될 것이 뻔합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트럼프의 맞수로 나서야하는 것일까요?
사람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자극하는 트럼프의 전략에 좋은 말과 진정성으로 맞서는 논객이나 학계 전문가, 종교계 지도자들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2016년 대선 후보들도 당장 경선과 대선 승리라는 목표에 매여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맡기기 어렵습니다.
현 상황에서 미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아이러닉하게도 그는 트럼프의 팬들이 두려워하는 그 모든 변화를 몸소 대변하는 인물이죠. 막말하는 개인 제트기 소유자의 활약에 맞서려면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힘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우선 “화난 백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현장 방문에 나서야 합니다. 이들은 오바마가 임기 동안 다가설 수 없었고, 그런 시도도 하지 않았던 집단에 해당합니다. 이런 식의 현장 만남은 어렵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흑인이지만 지난 10년 간 남부의 백인들, 즉 나를 싫어하는 집단으로 알려진 사람들과 꾸준히 대화를 나누어 왔습니다. 이런 노력은 내 삶에 영광의 상처와 함께, 소수의 귀한 우정을 남겼습니다. 남부군 자손 모임의 한 회원은 나의 형법 개혁 캠페인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죠.
전통적인 대통령의 미국 순방 일정에는 시카고나 퍼거슨처럼 인종 갈등의 뿌리가 깊은 도시, 아니면 최근에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던 샌버나디노 같은 곳, 또는 제조업 붕괴로 어려움을 겪는 디트로이트 등이 포함될 겁니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콘웨이처럼,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도시를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얼굴을 보여주고, 대통령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욕이라도 실컷 퍼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알고 있던 미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미국의 모습이 잡혀가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오바마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상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막연히 자신을 겨누는 변화의 창끝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일부 백인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은 인구 구성의 변화 뿐이 아닙니다. 최근 프린스턴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백인과 백인 젊은이들의 사망률은 낮아지고 있지만, 백인 중년층의 사망률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자살, 마약 중독, 재정적인 불안,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악화입니다. 소수자들이 여전히 각종 사회 불평등에서 어려운 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백인도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현재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유일한 지도자로 트럼프를 꼽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백인들이 우대받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소수의 인종주의자들과 함께, 트럼프는 많은 백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소수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고 그런 주장이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블루칼라 계층이 외벌이로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었던 시절에 비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한 분노와 좌절, 공포가 생겨날 것”이며, “트럼프 같은 사람이 이런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며 현실 인식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단순히 자신이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현장으로 뛰어들어 “레드 아메리카도, 블루 아메리카도 없다”고 외쳐야 합니다. 현장 방문이 경제 정책을 자세히 설명하려 하거나, 일자리와 외교 부문의 성과를 자랑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면전에서 불쾌한 이야기를 듣거나 봉변을 당할 위험이 있더라도, 우선은 귀를 열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공포에 기생하는 공허한 수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입니다. 권력의 상징인 미국 대통령도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국 사회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백인 어머니를 가진 아들, 노예의 후손과 결혼한 남자, 21세기 여성을 딸로 둔 아버지인 오바마 대통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이라도 어려운 현장에 뛰어들어 트럼프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는 것, 이것이 남은 임기 1년 간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이고, 그가 남길 최대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폴리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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