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터 업계의 최대 기업 가운데 하나인 렉스마크(Lexmark)사가 멕시코의 시우다드 후아레즈 시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십 명을 해고했습니다. 일당을 기존보다 약 400원 올려달라고 파업을 벌인 것이 해고 사유로 보입니다.
지난주 시우다드 후아레즈에 있는 렉스마크 프린터 카트리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백 명은 숙련 노동자의 일당을 114페소에서 120페소로 올려달라며 파업을 벌였습니다. 며칠 뒤 렉스마크 사의 답변은 총 120명을 해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세우려고 뜻을 모았던 이들이었습니다.
급작스러운 대량 해고의 칼바람에 노동자 가족들은 연말연시를 앞두고 경제적으로 큰 곤경에 처하게 됐습니다. 멕시코에서는 특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거나 가계 부채를 갚는 데 연말에 지급되는 특별 수당 ‘아기날도(Aguinaldo)’에 기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제조업 지역 가운데 하나인 시우다드 후아레즈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30만 명 정도가 있지만, 독립적인 노동조합은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 텍사스 주 엘 파소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이 도시는 최근까지 마약 카르텔을 비롯한 범죄조직이 활개를 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혔습니다.
여전히 치안은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미국 제조업체들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로 인한 세금 감면 혜택, 물류 비용 절감, 낮은 인건비 등에 매력을 느껴 시우다드 후아레즈에 투자를 계속해 왔습니다. 멕시코의 최저임금은 일당 70페소로 약 4,500원입니다. 멕시코와 미국의 무역 규모는 600조 원에 이릅니다.
올 한해 시우다드 후아레즈에서는 저임금, 지난 수십 년간 전혀 개선되지 않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 불만을 제기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레이저 프린터 분야의 선두주자인 렉스마크 사의 시가총액은 20억 달러로, 연 매출은 37억 달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1만4천 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임금 차감, 위험한 노동 환경, 만성적인 저임금을 비롯해 잇따른 노동 탄압에 노동자들의 불만은 계속 고조돼 왔습니다.
5년 7개월간 일한 직장 렉스마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미리암 델가도(37) 씨는 <가디언>에 실상을 소개했습니다.
“안면 마스크, 장갑을 비롯한 보호 장비를 회사는 전혀 지급해주지 않았어요. 손을 다치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출근 시간에 아주 조금만 늦어도 바로 임금이 깎였습니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어요. 상사로부터 갖은 괴롭힘은 그냥 참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0월 일당을 120페소로 올려달라는 요구가 거절되자 불만이 고조됐습니다. 델가도를 포함한 노동자 78명은 이에 맞서 주 정부의 분쟁중재위원회에 정식으로 노동조합 설립을 요구했습니다. 협상을 위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78명은 지난주 해고된 700여 명 가운데 한 명도 빠짐없이 포함됐습니다.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수사나 프리에토 테레사스 변호사는 현지 언론 <신엠바고>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중재위원회)가 노조 설립 허가서를 제출한 노동자들의 명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 부당 해고 과정에서 회사 측과 주 정부 사이에 모종의 협력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이들을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데 파업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프리에토 테레사스 변호사는 부당 해고에 대한 진정서를 이번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렉스마크의 제리 그라소 대변인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회사는 상호 존중과 직원들의 만족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렉스마크를 계속해서 좋은 일터로 유지하기 위해 직원들과 투명하고 솔직한 대화를 계속해나가려는 회사의 기본 방침은 여전하다.”고 말했습니다.
30년 전 시우다드 후아레즈에 정착한 뒤 내내 공장에서 일해 온 델가도 씨는 말했습니다. “노조를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뭉치려는 이들을 콕 집어내 해고한 겁니다. 정말 과거와 비교해서 바뀐 게 거의 없어요. 부당한, 모멸적인 근무 조건을 여전히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건 노동자의 몫이니까요. 제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일자리를 하루 아침에 잃었다는 것이죠. 공장에서는 더 일할 수 없으니까요.”
렉스마크는 앞서 노동법 관련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2010년 LA 카운티 상급 법원은 연차휴가를 다 못 썼을 경우 이듬해로 넘어가는 걸 금지한 렉스마크의 휴가 규정이 불법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렉스마크는 1991년 IBM에서 분리된 이래 ‘휴가를 안 쓰면 소멸(use it or lose it)’되는 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2011년 항소심에서도 판결은 뒤집히지 않았지만, 대신 항소심 법원은 렉스마크가 내야 하는 지불금 수백만 달러를 깎아줬습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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