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는 미국에서 단연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프로 선수의 경기력은 물론이고 일거수일투족이 세간의 관심을 끌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 평소와 달리 부진한 쿼터백은 팬들로부터 온갖 비난에 시달리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올 시즌이 끝난 뒤 시애틀 시호크스의 쿼터백 러셀 윌슨에 대한 평가에는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가 공개적으로 선언한 혼전 순결 약속이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관한 것입니다.
윌슨은 시애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수 시애라 프린세스 해리스와 연애 중입니다.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윌슨과 시애라는 “예수님이 하신 대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결혼 전까지는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을 샌디에고 락처치의 마일스 맥퍼슨 목사에게 털어놨습니다.
지난해 2월 팀을 48회 슈퍼볼 우승으로 이끌었던 최고의 쿼터백 윌슨은 한 번 결혼했다가 지금은 이혼한 상태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윌슨은 대중에게 자신과 시애라의 행복한 사랑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시애라의 히트곡 가운데는 강력한 섹스어필을 테마로 하는 곡들이 여럿 있습니다. 윌슨은 시애라가 TV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섹시하고 아름답지만, (혼전 순결을 지키기로 한) 약속은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몸이 재산이고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스포츠 스타들을 보고 우리는 흔히 선수들이 성생활도 대단히 왕성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러셀 윌슨처럼 금욕을 약속하거나 공개적으로 이를 지지한 스포츠 스타들의 역사는 뿌리가 깊습니다.
이런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걸까요? 더 강하게, 더 빠르게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어야 하는 스포츠를 고려하면, 섹스를 하고 사정을 하면 몸에서 기가 빠져나갈 것이라는 의견도 얼핏 일리 있는 주장 같습니다.
앞서 2009년, 또 다른 미식축구 쿼터백 팀 테보우도 혼전 순결을 선언했던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이유였습니다. 테보우는 지난 6년 기복 있는 플레이를 펼치며 별로 인상적인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수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그가 혼전 순결 약속을 지켰다면 섹스를 참는 것이 경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연예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테보우와 교제했던 전 미스 유니버스 올리비아 쿨포가 그와 헤어진 이유는 그의 혼전 순결 원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섹스가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사례를 미식축구 선수들 가운데 하나 더 찾아보죠. 뉴욕 제츠의 쿼터백 조 나마스가 1969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단서입니다. 그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결정전과 슈퍼볼 경기 전날, 각각 여러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조 나마스는 경기 전날 나누는 섹스가 오히려 경기력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인용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경기 전날이면 저는 으레 잠자리를 갖습니다. 저희 팀닥터가 게임 전날 섹스는 경기력에 방해될 뿐인 지나친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에 좋다고 하기도 했고요.”
감독, 코치들은 팀의 규율을 다잡으려는 방편의 하나로 시합 전 섹스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라인백으로 뛰었던 빌 로마노스키는 1980년대 당시 코치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다음 경기를 앞두고 “빨간불(red light)” 혹은 “파란불(green light)” 여부를 알려줬다고 말합니다.
“파란불이면 섹스를 해도 좋다는 뜻이었고, 반대로 빨간불이면 섹스 금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라이벌인 자이언츠와 경기를 앞두고는 코치가 대개 빨간불을 켭니다. 온 정신을 시합에만 집중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편을 압도해야 하니까 그랬던 거겠죠.”
지금까지 미식축구 이야기만 했지만, 다른 스포츠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이 열렸을 때도 대회 기간 중 선수들의 섹스를 금지한 국가대표팀이 있었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펫 수시치 코치는 기자들에게 단호히 말했죠. “(우리 선수들에게) 브라질에서 섹스는 없습니다.”
섹스를 하면 공격적인 성향이 옅어지고, 반대로 섹스를 참으면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믿음은 권투 종목에도 만연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시합 전 6주 동안 섹스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고, 레녹스 루이스도 몇 주 동안 섹스를 참으며 시합을 준비했습니다. 매니 파퀴아오의 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는 파퀴아오에게 경기 전 2주 남짓 섹스를 참으라고 주문했다고 말했습니다.
“제 선수들에게 전 이렇게 말해요. 열흘만, 열흘만 네가 규율을 지키며 시합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내게 보여다오!”
로치는 섹스 후 24~48시간 동안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진다는 의학 연구를 참조해 내린 방침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1999년 이탈리아의 과학자들은 섹스를 많이 할수록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오히려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과학적인 사실 여부와 별개로 로치가 “규율”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섹스가 경기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지만, 코치진과 선수들은 스스로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운동 외의 다른 것들을 일체 잠시 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육체적인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스포츠 외에 다른 직업, 다른 일도 섹스 혹은 금욕적인 생활의 영향을 받을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전 여자친구 크리산 브레넌은 잡스가 일하는 데 필요한 힘을 아껴두기 위해 때때로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섹스가 작품을 써 내려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에너지를 아껴두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할 때 나는 섹스를 참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해내는 동력원은 결국 같기 때문이죠.”
어쨌든, 섹스가 미식축구의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사례 하나는 올 시즌 윌슨의 경기력을 보면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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