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 주 클레이튼에 살고 있는 캐시 닐에게 지난번 가족 모임은 곤혹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조카의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정치 문제로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캐시가 석유 회사들이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금을 받고 있다며 비난하자, 그녀의 오빠가 환경보호국(EPA)의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문제라며 정면으로 반박한 것입니다. 결국 남매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주고받으며 얼굴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정치 성향의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미국 사회에서는 가족 모임마저도 정치 논쟁의 장이 되기 십상입니다. 아니, 오히려 가족 모임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드문 자리입니다. 펜실베니아대학의 정치학자 다이애나 머츠의 지적대로,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직장 동료 정도를 제외하면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주로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타임라인만 살펴보아도 당장 실감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향이 더욱 큽니다. 정원 가꾸기나 볼링 등, 정치와 전혀 관계없는 취미를 중심으로 사람들과 어울릴 때마저도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이게 되죠.
사실 가족도 정치 성향이 비슷한 집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향이 일치하는 경우, 자녀가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갖게 될 확률이 75%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가족에나 의견이 다른 삼촌, 처제가 있을 수 있고, 이 때문에 명절의 평화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오와대학의 심리학자 로버트 배런은 가족 간의 정치 논쟁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악마화”시키지 않고 정치 논쟁을 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정치 논쟁을 할 때면 늘 상대방의 동기를 의심하거나 상대가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고 있다고 단정짓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며 기본적인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삼촌과 의견이 다른 경우에는,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할 때보다 생산적인 토론이 될 가능성이 높죠.” 배런의 설명입니다. 의견을 좁히지 못했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널 사랑한단다”라는 대사로 논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도 가족 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명절에는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피로나 지나친 음주 때문에 사소한 의견 차이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평화로운 명절을 보내고 싶다면 유서깊은 테이블 매너를 따르는 것, 즉 모두가 종교와 정치 이야기를 삼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지만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설득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올해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네브레스카 주 링컨에 사는 공화당 지지자 카라 하이드먼은 지난 대선 전에 있었던 가족 모임 때 정치 이야기를 피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친척들이 대부분 두 정당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부동주(swing state)에 살고 있는데, 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못했나 싶어요. 선거가 그렇게 접전일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죠.”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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