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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공이 철학자보다 이 세상에 더 필요한 존재라고 말하는 루비오 의원님께

옮긴이: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TV 토론 중에 했던 발언에 관해 철학자이자 대학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가르치는 앨런 레비노비츠 교수가 공개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루비오 의원의 발언을 먼저 확인해야 하겠죠. 이 영상에 나오는 발언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사회자가 묻자 루비오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실제로 사람들이 받는 임금이 늘어나고 모두의 삶이 윤택해진다면 저도 당연히 인상을 주장하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예요. 21세기 경제 구조의 맥락을 모르고 그저 최저임금을 올리자고 하는 건 재앙에 가까워요.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궁극적으로 인간의 노동력이 가뜩이나 저렴한 기계보다 더 비싸지죠.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일자리는 더 줄어들게 될 뿐입니다. (…)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고등 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특히 직업교육이 중요합니다. 왜 우리 경제와 사회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직업교육에 우리 모두가 소홀한 걸까요? 용접공이 철학자보다 소득이 더 높아요.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용접공이 필요합니다. 철학자는 지금보다 좀 적어도 괜찮잖아요? (청중 박수) 제가 지금 제안한 대로 한다면 (직업교육을 강화해 더 많은 용접공을 키워내면) 모두가 더 잘 살게 될 거고 결국 모두의 소득도 덩달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님께,

저는 지금 학생들이 낸 보고서를 채점해야 할 시간을 쪼개 의원님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철학, 종교학 교수에게 채점은 솔직히 세상에서 제일 지겹고 따분한 일일 겁니다. 아, 채점보다 더 지겨운 일이 있긴 한데, 생각하고 연구한 내용을 정리해 논문을 쓰는 일이죠. 그래도 논문은 잘 쓰면 철학자로서 권위나 명성이라도 쌓을 수 있는데 말예요.

저는 또 지금 그림형제의 동화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고찰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요, 그 글도 이 편지를 쓰는 덕분에 조금 뒤로 밀렸네요. 정확히 말하면 그림형제의 작품 전체가 아니라 그 가운데 <운 좋은 한스(Hans im Glück)>라는 작품에 관해 쓰고 있어요. 사실 이 작품은 영어로 “Lucky Hans”로 번역돼 있는데, 제 생각에는 “Happy Hans”라고 번역하는 게 더 적확해 보여요. 왜냐하면, 음… 아니다, 됐습니다. 뭐 궁금하신 분들은 나중에 제 논문이 나오면 읽어보시면 될 테죠. 어차피 저 글은 글을 감수해주시는 분들을 포함해서 많아야 한 열 명 정도나 읽어주시면 감사할 글이긴 해요.

자, 그래요, 보시다시피 학문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가만 보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달려들어요. 그렇죠? 의원님께서 지난 공화당 TV 토론에서 현재 미국의 고등교육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있고, 21세기 인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시면서 “미국에는 더 많은 용접공이 필요하다, 철학자는 조금 덜 있어도 괜찮다”고 말씀하신 발언의 맥락도여기에 맞닿아있겠죠.

의원님의 조언을 따르자면 아마 저는 당장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거나 투자은행에서 일해야겠죠. 저는 학부는 스탠포드를 나오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를 받았습니다. 가만, 제 모교 두 곳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식이나 한가하게 가르치는 곳이긴 하네요. 어쨌든 거기서 학위 받은 제 친구들 중에는 무고한 이들을 변호해주는 변호사도 있고, 사람 목숨 살리는 의사도 있고 그래요. 그 친구들은 돈도 엄청 잘 벌어서 기부도 많이 하죠. “내가 이런 쥐꼬리만한 돈 벌려고 학교에 등록금으로 낸 돈을 생각하면 아까워 죽겠네, 그 교육 안 받았으면 아마 더 많이 기부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면서요. 물론 이 친구들은 농담으로 하는 소립니다.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려요. 아니, 변호사나 의사 말고 아예 저도 정치를 했어야 하나봐요. 루비오 의원님처럼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이 나라가 정치인을 더 필요로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절대로 지금 일을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사실 철학과 교수는 굉장히 멋진 직업이랍니다. 아마 투자은행에 다니는 친구들도 속으로는 철학과 교수가 하고 싶을 걸요? 이 글이 나가고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 어쩌면 투자은행가들이 너도나도 부교수, 외래교수라도 좋으니 철학과에 자리를 하나 달라고 몰려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도 아주 미미하겠지만 더 나아지겠죠.

저는 철학자, 인문학자, 교육자의 소임을 저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은 진실을 좇고 또 좇아 그것이 아무리 복잡하고 다소간 불편한 것이라도 밝혀내는 신성한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저희의 역할을 상당히 중요합니다. 진화론을 예로 들어볼까요? 루비오 의원님처럼 도저히 진화론의 사실관계를 이해하고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어보이는 분들에게도 이를 증명해내고 똑똑히 가르치는 일이 저희의 업인 셈입니다.

저는 철학자, 인문학자, 교육자의 소임을 저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간혹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 제 수업을 듣고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느끼는 보람은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무슨 연금술사라도 된 것처럼, 마술이라도 부려놓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사실 제가 가르치는 것이 언어라는 기호로 설명해놓은 수많은 표식의 집합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걸 갖고 사람들이 발딛고 있는 현실의 근본적인 부분을 아주 미세하게나마 바꿀 수 있는 일입니다. 교회 같다고나 할까요? 아, 그런데 배타적이지 않은, 모두를 위한 교회요.

다른 모든 직업, 소명이 그렇듯 학계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아니, 부패, 천박함, (정치적인 것 말고 그냥 일반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미에서) 보수주의, 심각한 관료주의, 만성적인 연구기금 부족, 자기 회의까지 생각해보면 문제 투성이네요.

하지만 저는 특히 “인문학이 밥 먹여주냐”는 말을 삼척동자도 하고 다니는 작금의 세태에도 학자들이 자기 회의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됩니다. 철학 수업을 들어본 학생이라면 인문학의 가치부터 참 많은 것에 관해 토론하는 그 과정에서 이미 인본주의적 노력을 기울이고 인문학의 정수를 체험했을 겁니다. 또한, 올바른 논증에 관한 연구와 토론, 사고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도 학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의원님은 그러든 말든 별 신경 안 쓰실 것 같긴 하네요. 대선후보 토론을 보고 나니 올바른 논증 자체는 후보로 나선 분들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 같은 인문학자들은 아마 의원님이 중요하게 여기실 듯한 가치에 반하는 일을 합니다. 종교학자, 철학자들은 사이비과학인 창조론의기원과 창조론이 지금껏 어떻게 지속돼 왔는지를 연구하고요, 사람들의 차이가 원래 그렇게 차이가 나도록 설계됐다고 말하는 인종차별주의자, 남녀차별주의자의 억지 논리를 박살내는 건 인류학자와 역사학자의 몫이겠네요. 사실 인문학자들이 무슨 영웅처럼 이 모든 대단한 일을 오롯이 다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쨌든 인류의 역사가 결국 정의의 편으로 발전하며 그게 멀지 않다면, 인문학자들도 그 역사의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루비오 의원님, 학문적인 것들은 죄다 쓸모없다고 단정하시는 의원님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도 비슷하긴 합니다. 인문학은 내팽개쳐두고 온통 STEM(이공계 교육) 이야기만 하시니까요.) 아무튼 학계에서 의원님과 같은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주장이 어째서 틀렸고 근거는 뭐가 잘못됐고 어디가 부족한지를 조목조목 지적해드리는 것이겠죠. 대개 이런 식입니다. 자신이 거둔 성공에 (고등) 교육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자기 만족에 빠져 원래 자기가 잘 나서, 뛰어나서 성공한 것처럼 착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 주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제 직업은 어디서든 오류, 잘못이 보이면 그걸 집어내고 바로잡는 겁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의원님이 폭언에 가까운 말씀으로 철학과 인문학을 비하하셨지만, 저는 제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제가 지금 몸담고 있는 교육기관이 사라지면, 역사는 왜곡되고 망각될 거니까요. 토론은 사라지고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끔찍한 세상이 오겠죠. 일생을 걸고 진실을 좇는 이들이 사라질 겁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몸담고 있는 상아탑을 무척 사랑합니다. 제 일터라서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로 사실 상아탑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현실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 속에서 상아탑이 하는 일이 뭐냐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 더 현명한 곳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죠.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루비오 의원님, 상원의원이란 자리, 정치인이라는 직업도 세상에 그만큼 이바지한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으신가요? (S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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