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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에게 물자보다 현금이 더 필요한 이유

현재 전 세계 난민 수는 2천만 명에 달하고, 그 중 대다수는 어린이들입니다. 국제 구호기구들은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올 여름 세계식량계획(WFP)이 자금 부족을 이유로 중동 지역 지원을 중단하는 등 어려움이 많습니다. 해외개발연구소(Overseas Development Institute)와 글로벌개발센터(Centre for Global Development)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난민 구호 사업의 개선책으로 ‘현물 대신 현금’을 제안했습니다.

세계 여러 개발도상국 정부가 빈곤층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에 반해, 작년 한 해 인도주의 단체에 들어온 기부 가운데 현금은 6%에 불과했습니다. 난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지원하지 않는 이유로 몇 가지가 꼽히는데, 우선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난민들이 돈을 현명하게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센딜 뮬레네이썬 교수가 말하는 이른바 “결핍의 사고방식(scarcity mindset)”이란 빈곤의 스트레스 때문에 미래 이익에 비해 현재 이익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문제는 구호 기구들이 난민들의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곳에는 필요없는 물자를 잔뜩 보내고, 정작 필요한 물품은 부족한 경우가 왕왕 생깁니다. UN의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내 시리아 난민의 70%가 구호 단체에서 지원받은 물품을 현금으로 바꾼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현물 지원은 난민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원 가운데 하나인 “역량”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정이나 정치적 목소리를 낼 권리 등도 필요한 법입니다. 하지만 길게 줄을 서 구호 물자를 타가야하는 생활은 난민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줍니다. 이에 반해 현금 지원은 눈에 잘 뜨이지 않고, 난민들의 행동 반경과 선택지를 넓혀줄 수 있습니다.

난민에게 현금을 지원하자는 주장에는 늘 다양한 우려가 따릅니다. 한 나라에 외부로부터 돈이 들어오면 그 나라의 통화 가치가 올라 무역수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IMF 경제학자들은 1980, 90년대에 돈으로 원조를 받은 나라들이 수출 산업을 발달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현금이 유입되면 지원받는 국가에서 식료품이나 집세 같은 생필품의 가격이 올라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이 증폭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난민에 대한 현금 지원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체 인구 대비 난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기 때문이죠. 또한 현물로 지원하는 방식은 거시 경제적인 여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외부로부터 물자와 서비스가 쏟아져 들어오면 국내의 산업이 타격을 입기 때문이죠. 신발 한 켤레를 사면 개도국 아동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탐스(TOMS) 슈즈의 경우, 지원 받는 국가의 자체 신발 제작 산업에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현금 지원에는 실용적인 장점들도 많습니다. 송금 기술의 발전으로 부정부패를 적발해내기 쉬워졌죠. 실제로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들에게 현금이 지급된 사례에서 부패가 있었다는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배송과 분배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것도 장점입니다.

물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지원받은 현금이 무용지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난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주려면 지금보다 현금 지원이 많아져야 합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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