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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로스를 꿈꾸는 당신을 위한 이색 여행, 컨테이너선 항해

로버트 리펠(Robert Rieffel) 씨는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Savannah) 해변을 산책다가 컨테이너선박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압도적인 뱃고동 소리에 매료됐습니다. 집에 돌아와 컨테이너선박을 타고 바다에 나가볼 기회를 찾아본 리펠 씨는 선박들이 매번 항해할 때마다 선원들 외에도 민간인 승객을 몇 명씩 태워준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관련 글을 찾아 읽고 먼 바다에서 태풍을 만났을 때를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로 보며 여행 계획을 설명하는 리펠 씨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걱정하던 아내도 마침내 함께 배에 오르기로 합니다. 2013년 6월, 리펠 씨 부부는 사바나 항에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는 컨테이너선박에 올랐습니다. 왕복 28일 여정이었습니다.

컨테이너선박은 때로 밀항자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합니다. 선원들이 뱃사람이 아닌 이들을 보면 의심을 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돈을 내고 승객을 받기도 합니다. 여객을 실어나르는 게 주 목적이 아니니 규모는 아주 작지만, 관련 여행사도 있습니다. 호주에서 20년째 컨테이너선박 여행 상품을 판매해온 여행사 “화물선 탐험(Freigter Expedition)”의 줄리 리차드(Julie Richard) 대표는 리펠 씨 같은 별난 취미를 가진 손님들을 대상으로 평생 영업을 해왔습니다.

“글쎄요, 여객선도 아닌데 왜 손님을 태우냐고요? 선장, 선원들이 바다에 나가서 심심하고 지루하지 않게 말동무 삼으려는 게 아닐까요?”

1년에 판매하는 상품은 보통 100~200건 정도. 컨테이너선박은 엄청 크지만 보통 태우는 손님은 배 한 척에 많아야 열 명 남짓입니다. 일주일 정도 여정부터 두 달 넘게 이어지는 긴 항해까지 상품은 다양합니다. 행선지도 화물이 가는 목적지만큼이나 다양하죠. 식사는 제공되지만, 자기 빨래는 스스로 해야 합니다. 방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해줍니다. 항구에 정박해있을 때 승객들이 뭍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건 자유입니다. 물론 출발 시간에 맞춰 배로 돌아오는 것도 본인 책임입니다. 뱃삯은 보통 하룻밤에 13만 원($120) 정도. 컨테이너선박의 주 수입원이 승객을 실어나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싼 편입니다. 승객들은 대부분 시간을 선실에 머무르는데, 침실과 개인용 욕실, 화장실이 배정되고 거실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은퇴한 수학 교사 리펠 씨는 컨테이너선박 여행을 두고 크루즈보다는 긴 항해(voyage)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즐길 거리가 분명 터무니 없이 부족하죠. 크루즈라면 매일밤 열릴 디너쇼도, 마술사도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수영장,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는 체육관, 사우나, TV가 있는 라운지, 탁구 같은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 등을 빼면 컨테이너선박은 물건을 잔뜩 실은 거대한 고철 덩어리일 뿐입니다. 배에 타는 승객들은 무엇보다 스스로 시간을 잘 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애당초 그러고 싶은 사람들이 타기도 하지만요.

캘리포니아에 사는 엔지니어 주드 스피틀러(Judd Spittler) 씨도 컨테이너선박 여행의 매력에 빠져 1999년 2주 동안 미국 마이애미를 출발해 도미니카공화국을 거쳐 베네수엘라까지 항해를 다녀왔습니다. 먼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 위에서 사는 건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해서 몸소 실천에 옮겼다는 스피틀러 씨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할 일이 너무 없어서 따분했던 순간이 없지 않았죠.”

그렇지만 그 경험은 굉장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책을 읽고, 끝없이 차곡차곡 쌓인 컨테이너와 바다 사진을 찍고 갑판 을 한 바퀴씩 산책하며 선원들과 얘기를 나눈 건 절대 평범한 일상이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베네수엘라에 정박했을 때는 선원들과 함께 뭍에 나가 노래방에 가서 놀다 오기도 했습니다.

리펠 씨의 배 위에서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스도쿠를 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죠. 아내는 뜨개질을 했습니다. 다른 승객과 선원들을 방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갑판을 산책할 때는 규정에 따라 반드시 형광색 안전모와 조끼를 입고 걸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유튜브에서 봤던 폭풍을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다른 배와 마주치는 일도 없었습니다. 바다가 넓고 각각 정해진 항로가 있기 때문에 기껏 해야 아주 멀리 불빛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크루즈 여행과 컨테이너선박 여행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아마 음식일 겁니다. 승객들은 늘 선장, 선원들과 밥을 같이 먹는데 선원들이 즐겨 먹는 음식 메뉴를 여행 내내 같이 먹게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리펠 씨는 우크라니아 출신 선원들의 취향에 따라, 스플리터 씨는 독일 출신 선원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각각 먹었습니다. 면세점에서 살 수 있는 술은 비교적 풍족하게 제공됐습니다.

리펠 씨는 2013년 항해를 떠나기 전 상당히 꼼꼼하게 이것저것 알아본 덕분에 컨테이너선박을 타고 바다에 나간 것이 난생 처음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덜 놀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배에 올라타자마자 보이던 끝없이 늘어선 컨테이너박스를 봤을 때 느낀 경이로움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디스코에서 춤 추는 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알래스카로 크루즈 여행을 갔던 적이 있는데, 매일 밤 파티가 열렸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하나도 신나지가 않았죠. 제 취향이 그런 걸요, 만약 누군가 저보고 제가 원하는 식으로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라고 하면 저는 망설임 없이 컨테이너선에 오를 겁니다.” (Atlasobsc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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