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0년 7월,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역사적인 곡이 1위에 등극합니다. 하와이 출신의 발라드 가수 글렌 메데이로스가 부르고, 바비 브라운이 랩을 맡은 < She Ain’t Worth It>이라는 노래였죠. 음악적으로 전혀 비범하지 않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두 가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노래 중간에 랩이 더해진 곡으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피처링(feat.)”이라는 단어가 빌보드 1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빌보드 차트에는 “피처링”이 넘쳐납니다. 2015년 7월 25일 현재, 핫 100 차트에는 피처링이라는 단어가 총 29번 등장합니다. 히트곡 100곡 중 무려 3분의 1이 아티스트 한 사람 또는 한 팀의 노래에 다른 누군가가 참여한 형태로 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피처링 형태의 곡이 인기를 끌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메데이로스 feat. 바비 브라운” 이전에도, 피처링 곡은 여럿 있었습니다. 효과적인 장르 크로스오버로 1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끈 곡은 <She Ain’t Worth It>이 처음이었던 듯 합니다. 당시 메데이로스는 1987년의 히트곡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의 후속곡 느낌으로 업템포의 노래를 준비했고, 녹음까지 다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음반사 사장의 친구인 릭 제임스가 메데이로스에게 당시 대스타였던 바비 브라운과 함께 작업해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메데이로스의 스튜디오에 찾아온 바비 브라운은 즉석에서 브릿지 부분의 가사를 써내려갔고, 노래 처음과 중간 부분에 직접 등장해 노래를 완성했죠. 마침내 이 곡이 1위에 등극했을 때, 이는 수퍼스타의 도움이 평범한 뮤지션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증명했을 뿐 아니라 노래와 랩을 혼합한 장르가 지닌 막강한 상품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티스트들 간의 협업은 1990년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노래에 참여하더라도 앨범 자켓에 작사가 등으로 작게 표시될 뿐, 곡 주인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피처링 아티스트가 더 많은 조명을 받게 된 배경에는 보다 두드러진 하이브리드성을 지닌 장르인 힙합의 부상이 있었습니다. 힙합은 래퍼와 디제이 등 역할이 다른 사람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장르이기 때문에, 곡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합당한 타이틀을 주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협업한 아티스트에게 어떤 타이틀을 줄 것인지는 빌보드 차트의 75년 역사 내내 논쟁 거리였습니다. 1940년 7월 마지막 주의 1위 곡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I’ll Never Smile Again>이었지만,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앨범에는 “토미 도시와 오케스트라”의 곡으로 표시되어 있고, 차트에도 “토미 도시”라고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프랭크 시나트라 때문에 음반을 샀겠지만, 록의 등장 이전 음반 업계 관계자들에게는 밴드 리더가 오늘날의 스타 디제이 같은 존재였죠. 도시가 캘빈 해리스였다면, 시나트라는 리한나였던 겁니다.
이후 6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중 음악 업계는 피처링 아티스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극도로 인색했습니다. “아무개와(and) 아무개” 같은 표기조차 정식으로 팀을 결성한 듀오, 또는 입지와 역할이 동등한 아티스트들의 협업에만 드물게 쓰였죠.
60년대에 있었던 단 하나의 예외가 바로 비틀즈였습니다. 비틀즈의 1969년 싱글 <Get Back>이 “비틀즈와 빌리 프레스턴(The Beatles with Billy Preston)”의 곡으로 표기된 것인데요, 비틀즈와 협업했던 다른 아티스트들이 이와 같은 크레딧을 받지 못했는데 프레스턴만 예외였던 이유는 멤버들과의 친분 덕분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건간에, <Get Back>은 또 다른 의미에서 역시 의미심장한 곡이었습니다. 흑인 알앤비 아티스트가 백인 록밴드를 지원하는 형태는 오늘날 차트를 장악한 피처링곡들의 원형이니까요.
빌리 프레스턴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후에도 참여 아티스트 표기는 업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믹 재거나 존 레논과 같은 거물들도 다른 아티스트의 곡에 참여하고 곡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70년대를 휩쓴 디스코 장르의 곡들, 즉 프로듀서가 곡을 쓰고 흑인 또는 여성 보컬이 노래를 부르는 형식의 노래는 “피처링” 표기에 적합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업계의 표준은 단독 아티스트 표기였습니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슈거힐갱의 <Rapper’s Delight>를 필두로 힙합이 음반 업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래퍼와 프로듀서의 이름을 나란히 앨범 자켓에 올리거나, “퓨리어스 파이브가 슈거힐갱을 만나다”라는 식으로 곡 주인을 거창하게 표기하는 경우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역시 80년대 내내 곡에 큰 기여를 하고도 이름을 전면에 싣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았습니다. 1984년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Thriller>에서 랩을 맡았던 빈센트 프라이스도 그런 신세였죠.
그러나 피처링 래퍼들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랩과 팝의 크로스오버라는 장르에 한 획을 그은 두 곡은 1984년의 히트곡 <I Feel for You>와 1989년작 <Friends>입니다. <I Feel for You>는 샤카 칸의 노래지만, 여러 거물의 참여로 탄생했습니다. 멜 멜의 랩과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 연주가 들어있고, 작곡가는 프린스였죠. 오늘날 같으면 분명 “샤카 칸 feat. 멜 멜, 스티비 원더”의 곡이 되었겠죠. 80년대의 관행에 따라 이들의 이름이 샤카 칸과 나란히 오르지는 않았지만, 대중은 이런 방식의 협업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Friends>는 실제로 “조디 와틀리와 에릭B/라킴(Jodi Watley with Eric B. and Rakim)”의 곡으로 음반에 실렸습니다. 처음부터 프로듀서가 에릭 B의 디제잉과 라킴의 랩이 들어갈 자리를 비워두고 기획한 곡으로, 90년대 이후 랩 피처링곡들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0년 <She Ain’t Worth It>이 1위에 오른 후, 1년 만에 또 다른 피처링곡이 핫 100 차트 정상에 등극합니다. 바로 마크 왈버그의 <Good Vibrations>입니다. 이 노래의 주인은 “마키 마크와 펑키 번치 feat. 롤리타 홀로웨이”로 되어 있습니다. 뒤에 깔린 파워풀한 보컬은 홀로웨이의 1980년 히트작 <Love Sensation>의 일부인데요, 샘플링 원곡의 주인에게 정당한 크레딧을 주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피처링 아티스트로 홀로웨이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1991년 말에 이르자, 피처링곡의 대표적인 형태 두 가지가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하나는 <She Ain’t Worth It>과 같이 브릿지 부분에 랩이 들어간 형태, 두 번째는 <Good Vibrations>와 같이 후크 부분을 객원 보컬이 부르는 형태입니다. 바야흐로 멜로디와 템포, 장르의 크로스오버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 20년 동안 인기를 얻은 피처링곡들은 대부분 이 두 가지의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Jam>, 블랙스트리트의 <No Diggity>, 비욘세의 <Crazy in Love>, 리한나의 <Umbrella>가 첫 번째 유형이라면, 쿨리오의 <Gangsta’s Paradise>, 넬리의 <Dilemma>는 두 번째 유형에 속합니다.
지난 15년간 “피처링”의 범위는 훨씬 더 확장되었습니다. 래퍼들로부터 시작된 “크레딧의 자유화”는 악기 연주자들에게까지 퍼져나갔습니다. 21세기 초,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는 미셸 브랜치, 롭 토머스 같은 수퍼스타들을 피처링 아티스트로 세우고, 메인 크레딧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I Don’t Wanna Know>의 엔야처럼 노래 한 소절 부르지 않고 샘플링 소스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고, 배우 제이미 폭스처럼 카니예 웨스트의 노래 도입부에서 15초 간 레이 찰스의 모창을 선보이고 크레딧을 얻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카니예 웨스트는 피처링 아티스트 타이틀을 마구 나누어 주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죠.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네다섯 명의 아티스트가 크레딧을 나눠갖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부상으로 메인 아티스트의 개념이 흐려지기도 했습니다. 유명 디제이가 스타 보컬과 래퍼들을 기용해 곡 작업을 하고, 디제이가 메인 크레딧을 가져가는 식입니다. 브루노 마스의 경우처럼, 유명 래퍼의 피처링 아티스트로 데뷔했다가 자신이 더 대형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고, 저스틴 비버처럼 유명 디제이의 작업에 피처링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려 커리어를 부활시키려고 시도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피처링 열풍의 시초는 유명인과의 작업을 꿈꾸던 젊은 뮤지션과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던 거물 간의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이익이 피처링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록의 시대에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협업일 수밖에 없었고, 힙합과 일렉트로닉이 부상하면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올 여름, 라디오에서 브루노 마스가 피처링한 마크 론슨의 <Uptown Funk!>나 켄드릭 라마가 피처링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Bad Blood>가 흘러나오면, 우리는 음악사의 오랜 고민, 즉 “서로 다른 장르를 어떻게 결합하고 크레딧을 누구에게 어떻게 줄 것인가”의 결과물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S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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