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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 인간극장 – 뒤바뀐 쌍둥이의 삶 (8)

옮긴이: 27년 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Bogotá)의 한 병원에서 실수로 일란성 쌍둥이 신생아 두 명이 뒤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 이란성 쌍둥이 두 쌍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두 쌍둥이, 네 청년은 24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이번 주 총 여덟 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지난주 뉴욕타임스에서 줄곧 이메일로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7부 보기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으로

산탄데르로 가는 길에 지역 정치인 한 명이 우연히 일행을 지나쳤습니다. 그는 이 근처에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구덩이가 있다며, 시간 되면 지역의 명물인 그 구덩이에 꼭 한번 들러보라고 여러 차례 권했습니다. 산탄데르 사람들은 약 150m 너비에 깊이도 200m나 되는 큰 동굴 같은 구덩이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고 잘 보이지도 않는 깊은 밑바닥을 들여다보려고 목을 쭉 빼곤 합니다.

네 청년은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구덩이라는 설명을 따라 하며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몬토야는 그 표현이 이들 네 명의 삶에 일어난 기구한 운명을 비유하는 데 알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몬토야는 그들에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감정이 어땠는지, 또 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특기할 만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기록해 왔습니다. 호르헤가 윌리암을 처음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은?

“어지러웠죠. 롤러코스터를 타고 올라갈 때 곧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질 거라는 걸 알고 긴장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몬토야는 그 상황과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심연 속으로 자꾸 내려가고는 있는데 바닥이 어딘지,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는 것. 손발을 뻗어 여기저기 더듬어보아도 계속 침잠하기만 할 뿐 어디로 가는 건지 방향을 알 수 없는 상황.”

쌍둥이들은 그들의 삶에 닥친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몬토야와 세갈 두 학자와 공유하고 있었지만, 이들의 지침과 조언이 때로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윌베르와 어떤 점이 다른지를 생각해봤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까를로스는 꽤 놀란 듯했습니다.

“글쎄요, 우린 늘 같은 점, 비슷한 점만 찾으려고 했던걸요. 다른 점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까를로스는 새로운 걸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워 보였습니다.

“한 번은 저는 연상인 여자를 더 좋다고 한 적이 있고, 윌베르는 반대로 연하가 좋다고 한 적이 있긴 해요.”

이건 차이라고 하기 좀 그렇습니다.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그 여자가 어리다면 까를로스는 금방 말을 바꿀 테니까요. 게다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까를로스와 윌베르가 역시 닮았다고 봐야겠죠. 반면 까를로스가 윌베르보다 더 냉소적이고 정중하다는 점, 윌베르가 까를로스보다 어린이들과 더 잘 놀아주고 쾌활하며 잘 웃는다는 건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호르헤와 윌리암 사이에도 뚜렷하게 다른 게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모험과 탐험을 즐기는 호르헤는 아직도 꿈이 많습니다. “뭐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면 결국 세상이 알아줄 것이다.” 호르헤다운 신조입니다. 윌리암은 다릅니다. 이미 갖은 고생을 많이 하고 좌절도 여러 번 경험했던 윌리암입니다. 얼굴도 수척하고 표정은 어딘가 지쳐있습니다. 그가 터득한 교훈이 있다면,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는 것입니다. 호르헤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부딪혀보려고 하겠죠.

이런 차이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학습한 것일까요? 아니면 후생학적 특성이 다르게 발현될 것일까요? 여기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유전자를 물려준 친엄마 손에서 자란 호르헤와 윌베르에게는 까를로스와 윌리암에게는 없는 일종의 생물학적 보호막이 하나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까를로스는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 호르헤와 윌리암을 낳아준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콜롬비아 부모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소속감을 강화하는 육아법(attachment parenting)을 위해 어머니는 사촌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이 육아법은 아이를 가만히 수건으로 감싸 안고 말을 걸고 하는 것인데, 까를로스는 어머니가 항상 호르헤를 안고 있었고, 자신을 안아준 건 그 사촌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호르헤를 더 사랑해서 그랬던 건 아닐 테지만, 모성 본능이 자신이 낳아준 아이에게 먼저 손이 가도록 유도했는지도 모릅니다.

5월 어느 날 까를로스는 윌베르에게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을 사람들 많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뵙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나 친척은 물론 언론사 카메라로 북적이지 않는 곳에서 말이죠. 윌베르로부터 그 소식을 들은 윌리암도 까를로스가 가족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게 아니라, 원래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이는 것 자체를 잘 못 견딘다는 걸 알게 됐기에, 흔쾌히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산탄데르로 가기로 한 6월 어느 주말, 갑자기 윌베르는 근무가 잡혀 까를로스와 호르헤, 그리고 윌리암 셋이 까르멜로와 아나를 방문하러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가까운 가족들끼리만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버스에서 까를로스는 윌리암 옆에 앉았습니다. 어느덧 라파즈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윌리암은 언젠가 라파즈 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할 거라며 구체적인 계획을 까를로스에게 말해줬습니다. 정치에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던 까를로스는 윌리암의 야심 찬 계획에 감명받았습니다. 단지 야망에 불타는 게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착실히 준비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따로 배우고 있다는 것도 대단했습니다. 세갈 교수와 몬토야 교수의 질문에 답을 하다가 까를로스는 윌베르가 어렸을 때 학교를 남들처럼 마치지 못한 데 큰 미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윌리암이 놀라운 열정으로 교육을 받고자 노력해온 데 반해 윌베르는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윌베르와 맨날 하는 여자 얘기 말고 좀 더 진지한 이야기,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윌베르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싶고, 할 수 있다면 윌베르를 돕고 싶었던 까를로스에겐 실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윌베르도 까를로스가 특히 둘이서 얘기도 더 많이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까를로스가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윌베르는 알고 있습니다. 윌베르에게도 그만의 삶이 있습니다. 얼마 전 생긴 여자친구도 있고, 그 여자친구가 키우는 두 아이도 있습니다. (윌베르의 아이는 아닙니다) 이 모든 경험이 윌베르에게는 다른 세 형제에게만큼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니, 윌베르가 먼저 복잡한 생각을 알아서 피하고, 필요한 결정만 간단하게 내리면 그만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윌베르는, 스스로 늘 입버릇처럼 말하듯, 단순한 사람이니까요.

까를로스에게 네 번째 산탄데르 방문은 특별했습니다. 밤새 버스를 타고 산탄데르에 도착한 건 이른 아침. 시골 경치를 구경하며 온 까를로스는 특히 피곤했지만, 그는 잠을 자는 대신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목욕을 했고, 주변의 새가 지저귀는 소리, 집안의 앵무새가 전통 음악 란체라(ranchera)를 구성지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윌리암과 호르헤가 잠든 사이에도 그는 집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다 부엌에서 저녁 식사 요리에 낼 양고기를 다듬고 있는 아나 곁으로 갔습니다. 까를로스의 키득키득하는 웃음소리는 아마도 아나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고 윌리암과 윌베르가 얘기해준 적이 있는데, 아직 정작 오리지날 버전 웃음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까를로스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나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처음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제일 먼저 나온 주제는 역시 아나의 건강이었습니다. 무릎이 아프고 관절이 쑤시고, 등도 뻐근하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는 아나의 말에 까를로스가 대답합니다.

“평생 그렇게 힘들게 일해오셨는데, 이제 자식들도 다 컸잖아요. 일 너무 많이 하지 마시고 그만 좀 쉬셔요.”

친해졌다고 말하기엔 아직 함께한 시간이 모자라지만, 적어도 아나를 대하는 것만큼은 훨씬 더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르헤는 늘 까를로스에게 너를 낳아준 어머니인데 본능적으로 끌리지 않는 게 참 이상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벌써 돌아가셔서 얼굴을 보지도 못한 엄마에게 이렇게 애착을 느끼는 윌리암과 다르다면서 말이죠. 까를로스는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그래서 “너를 낳아준 어머니에게 더 잘 하렴, 아껴드리렴” 하고 친해져도 좋다는 허락을 해주셨다면, 아나와 좀 더 가까워졌을까 스스로 물어봅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까를로스와 윌리암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이 다른 겁니다.

 

쌍둥이 형제

본격적으로 연구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갈 교수는 사전에 실시한 검사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들끼리 비슷할 거라 짐작했던 몇 가지 항목에서 함께 자란 형제들끼리 훨씬 더 비슷하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세갈 교수는 꽤 놀랐습니다.

“아마 이 결과는 자라난 환경이 한 사람의 성격과 특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이 결과는 시골에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의 설문조사 노이로제 때문에 왜곡됐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일은 곧잘 해서 인정받고 남들보다 빨리 승진한 윌리암이지만 설문지를 받아들고는 중대한 시험이라도 보는 것처럼 잔뜩 긴장했으니까요. 하지만 세갈 교수는 네 청년의 사례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에 관한 후속 연구를 이끄는 촉매제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질문지에 답을 하며 네 청년은 각각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집에 책이 몇 권이나 있었습니까? 담배를 피운 적이 있습니까? 가족들끼리 느끼는 바, 생각하는 바를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었습니까? 아니면 혼자 가슴 속에 묻어놓는 편이었습니까? 세갈 교수가 연구실로 돌아가 답안을 분석하고 책을 쓰는 순간, 두 쌍둥이는 이제 과거로부터 돌아와 다시 현재를, 미래를 살기 시작할 겁니다.

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윌리암이 그려보는 것처럼 넷이 다 같이 모여 살게 될까요? 여느 가족의 형제, 자매들처럼 그들도 누군가와 결혼해 가정을 꾸릴 겁니다. 다 같이 모여 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가장 마음이 맞고 편한 형제하고만 같이 살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누가 가장 가까운 형제일까요? 생김새도, 유전자도, 성격도 꼭 닮은 일란성 쌍둥이? 아니면 27년을 함께 지내온 가상의 쌍둥이? 쌍둥이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드문 일인데, 이들은 각자 또 다른 쌍둥이 형제를 만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연구에 협조해준 데 대한 답례로 세갈 교수와 몬토야는 보고타에 있는 한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두 쌍둥이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가운데 춤을 출 수 있는 넓은 무대가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였습니다.

호르헤와 윌리암은 세갈 교수를 모시고 나가 교본대로 깔끔하게 춤을 췄습니다. 리듬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까를로스와 윌베르. 춤에 일가견이 있는 까를로스가 윌리암에게 스텝을 몇 가지 가르쳐줍니다. 리듬을 갖고 노는 까를로스가 이내 흥에 겨워 춤에 빠져드는 사이 윌베르도 금방 스텝을 몸에 익히는 듯합니다.

“윌베르도 역시 소질이 있네. 몇 번만 더 춰보면 정말 잘 추겠어.”

몬토야가 말했습니다. 음악이 멈추고 모두가 테이블로 돌아와 아구아르디엔떼(aguardiente)로 목을 축이는 사이, 까를로스와 윌베르는 어느새 여자들에게 가서 말을 걸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술이 더 들어갈수록, 까를로스는 클럽을 주름잡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친구와 함께 만들었다는 술자리용 묘기 동작을 보여주겠다며 다리를 구부리고 허리를, 온 상체를 잔뜩 뒤로 젖힙니다.

“매트릭스야.”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총알을 피해 몸을 뒤로 젖히는 그 장면을 따라 했다는 말이겠죠. 그런데 정말 허리가 네오보다도 더 꺾인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안 넘어집니다. 윌베르, 윌리암, 호르헤가 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까를로스 옆으로 갑니다. 누구는 재밌다며 신기해하는 표정, 누구는 저런 걸 왜 하냐는 듯한 못마땅한 표정, 누구는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표정입니다. 누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어쨌든 까를로스는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흥겨운 음악도 계속 이어집니다. 넷은 각기 다른 조합으로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춤을 추고 여자들에게 말을 걸고 테이블로 돌아와 누가 어땠다는 평가를 주고받고 다시 무대로 나갑니다.

참으로 개성이 뚜렷한 네 청년입니다. 동시에 여기저기 닮은꼴이 참 많은 두 쌍둥이입니다. 일란성 쌍둥이 두 쌍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형제이자 가상의 쌍둥이 두 쌍이기도 하죠. 그래서 넷은 그냥 한 형제인지도 모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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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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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번역을 끝내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윌리암은 호르헤와 까를로스의 재정 도움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뒷얘기가 원문기사 댓글에 있네요. 4형제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 아, 저도 확인해보지 못한 원문 댓글까지 확인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리긴 했지만, 머리보다도 가슴으로 번역하고 소개할 수 있어서 보람이 더 했던 한편의 소설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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