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27년 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Bogotá)의 한 병원에서 실수로 일란성 쌍둥이 신생아 두 명이 뒤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 이란성 쌍둥이 두 쌍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두 쌍둥이, 네 청년은 24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이번 주 총 여덟 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지난주 뉴욕타임스에서 줄곧 이메일로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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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시골의 만남
아침 식사를 마친 일행은 다시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라파즈를 떠난 차는 자갈이 군데군데 흩어진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또 한참을 달립니다. 작렬하는 태양에 운전사는 연신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바쁩니다. 마침내 오전 11시 반, 초원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정자 옆에 차가 멈춰섭니다.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는 다 왔습니다. 이제 남은 길은 걸어가야 합니다.
윌리암과 윌베르가 어릴 때 자란 집에는 지금은 형 안셀모(Ancelmo)가 살고 있는데, 마침 안셀모의 생일이라 부모님을 비롯해 온 가족이 그 집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세갈 교수는 산탄데르에 있는 가족들이 모두 모인다는 소식에 그들과의 인터뷰를 계획했습니다. 그리고는 인터뷰에 필요한 자료들을 밝은 보라색 슈트케이스에 담아왔습니다. 하지만 잘 포장된 도시의 아스팔트 도로라면 모를까 들판에 난 풀들 위로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이 길은 윌리암이 어릴 적 엄마와 장을 보고 산 물건들을 가방에 이고 다녔던 그 길입니다. 윌리암은 가볍게 슈트케이스를 어깨에 메고 앞장섰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가파른 오르막이 나왔습니다. 짐을 지고 걷는데도 윌리암은 가장 빨랐습니다. 윌리암은 지쳐가는 일행을 다독이며 이끌었습니다. 호르헤는 곧잘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까를로스는 금방 뒤처졌습니다. 윌리암은 발길을 재촉하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혼자 중얼거리더니 온 길을 되돌아 까를로스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세갈 교수의 슈트케이스를 까를로스에게 넘겨버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초원을 따라 나 있던 길은 어느덧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졌고, 이번에는 진흙으로 된 뻘이 나타났습니다. 길 곳곳에 뻘로 된 구덩이가 있었는데, 어느 곳은 발이 50cm씩 쑥 빠질 만한 곳이었습니다. 패션과 외모에 유난히 신경을 많이 쓰는 까를로스는 이날도 -제 딴에는 그냥 평범하게 입었을지 모르지만- 한껏 멋을 냈습니다. 진흙이 옷에 튀지 않을까 조심조심 걸었지만, 아디다스 농구화가 진흙 범벅이 되는 건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까를로스는 걷느라 이미 지치고 힘들기도 했지만, 기분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까를로스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산탄데르 방문이었습니다. 한 번은 두 쌍둥이의 생일잔치를 라파즈에서 했었고, 친부모님(까르멜로(Carmelo)로 통하는 호세 델 까르멘 까냐스(José del Carmen Cañas)와 아나 델리나 벨라스코(Ana Delina Velasco))이 사시는 곳에 간 적도 있습니다. 사실 두 번 모두 산탄데르에 머물 때마다 까를로스는 불편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나타나 갑자기 친지, 가족이라며 인사를 하고 반갑게 아는 체를 하는데, 그 어색함을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던 겁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와서 한 마디씩 건네는데, 정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사람들에 치이느라 부모님과 이야기도 제대로 못 나눴으니까요. 윌리암이 자신의 이런 표정과 행동거지를 보면 아직도 철이 안 들었다고 속으로 경멸할 걸 잘 알면서도, 불편함을 숨기기란 참 어려웠습니다.
윌리암과 윌베르의 아파트에서 친부모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의 문제는 집안에 들어와 진을 치고 있던 콜롬비아 뉴스잡지의 카메라 기자들이었습니다. 플래시 세례 때문에 슬픔이나 벅차오르는 감정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까르멜로가 자신을 꼭 안아줬을 땐 난생처음 느껴보는 아버지의 품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까를로스와 호르헤는 평생 아버지의 사랑은 받아본 적이 없으니 더 뭉클한 순간이었죠. 하지만 계속 흐느끼던 어머니 아나를 바라보는 까를로스의 감정은 어딘가 복잡했습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컸던 까를로스는 돌아가신 어머니 말고 다른 사람을 도저히 어머니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나의 눈물을 닦으며 까를로스는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울지 마세요. 이렇게 된 것도 다 신의 뜻이겠죠.”
윌리암과 윌베르가 자란 집으로 향하는 일행 위로 산탄데르의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까를로스는 진흙에 발이 푹푹 빠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앙다물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늘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쓰던 까를로스가, 바지 밑단에 난 작은 보푸라기도 꼭 떼어내고 깔끔하게 옷을 입는 데 무지하게 신경을 쓰던 까를로스가 오늘은 진흙이 옷에 튀든 말든 개의치 않습니다. 이미 진흙에 빠진 발은 물론이고 흙이 무릎까지, 온 다리에 튀었습니다. 그래도 까를로스는 계속 걸었습니다.
한 시간도 더 걸었을까. 까를로스는 마침내 땀 범벅, 진흙 범벅이 되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도, 세면대도 없는, 페인트칠조차 되지 않은 나무로 대충 지어 올린 오두막집, 윌리암과 윌베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집에는 이미 가족, 친지들이 모여있습니다. 아버지 까르멜로와 어머니 아나도 나와 있습니다. 까를로스는 까르멜로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둘은 반가움에 포옹을 했지만, 그 뒤로는 말이 없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 듯했습니다. 윌리암은 바로 곁에서 까를로스와 까르멜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보라색 줄무늬 남방을 입은 윌리암의 신발에는 흙이 별로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까를로스는 민소매 셔츠에 배트맨이 그려진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습니다. 까를로스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윌리암이 다가와 나지막이 주의를 시킵니다.
“모자랑 선글라스 당장 벗어. 그런 건 여기 집이랑 안 어울려.”
까를로스는 호르헤를 찾았습니다. 호르헤는 까를로스에게는 없는 친화력을 발휘해 산탄데르의 가족들에게 부지런히 인사하고 다니며 벌써 웃음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침 식사 자리에서 호르헤가 꺼낸 말 때문에 까를로스는 심기가 불편합니다.
‘호르헤는 정말 내가 원래 팔자대로 산탄데르에서 자라지 않은 덕분에 큰 행운을 누리게 됐다고 모두 앞에서 심경 고백이라도 하라는 마음에 그 얘길 꺼낸 걸까?’
까를로스가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닙니다. 호르헤의 말대로 친부모와 산탄데르에서 살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을지를 상상해보며 며칠 밤을 잠 못 이루기도 했습니다. 윌리암과 윌베르의 형제 가운데 두 명이 벌써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명은 총기 사고로, 다른 한 명은 군 복무 중에 작전을 수행하다 죽었습니다. 이곳에서 자랐으면 지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보고타는 착하게 살기 쉬운, 참 안전한 동네라는 생각도 했고, 산탄데르에서 자랐다면 게릴라에 가담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어디에서 자랐든 지금처럼 성공했을 거라는 믿음을 사실 까를로스는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과연 지금 같은 성격을 갖춘 사람이 됐을지 자신도 의문스러웠습니다.
그러니까, 윌리암이 의심했던 것처럼 까를로스는 허무맹랑한 생각만 하는 철없는 어린애는 아니었던 겁니다. 단지, 사람들이 다 같이 있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하나하나 변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럴 성격이 아니기도 했지만.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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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는 인생극장이며 기자의 글솜씨도 보통이 아니네요. 장대한 르포를 보는 것 같아요. 원문이 하도 궁금해서 다 보았는데 사진이 있으니까 글이 훨씬 더 생동감 있더라구요.
저도 옮기면서 정말 여러 번 가슴이 저렸습니다. 사진을 같이 옮기지 않은 이유는 독자분들이 원문을 확인해보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이기도 했습니다. 가슴으로 공감하며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