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27년 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Bogotá)의 한 병원에서 실수로 일란성 쌍둥이 신생아 두 명이 뒤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 이란성 쌍둥이 두 쌍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두 쌍둥이, 네 청년은 24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이번 주 총 여덟 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지난주 뉴욕타임스에서 줄곧 이메일로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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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
2013년 여름 어느 토요일, 하네스(Janeth Páez)는 친구 라우라(Laura Vega Garzón)에게 너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정말 맛있는 돼지갈비를 파는 집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한참을 설득하는 중입니다. 하네스가 굳이 보고타 북쪽에 있는 그 마트에 가려는 이유는 정육 코너에 남자친구의 사촌인 윌리암(William)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재주가 좋아 쇠고기 살을 발라내는 일부터 콩을 넣고 삶아먹으면 정말 맛있는 돼지 족발을 써는 일까지 뭐든 능숙하게 해내는 윌리암은 하네스와 친구가 갈비를 사러 왔다고 하면 분명 값을 깎아줄 겁니다.
하네스를 따라나선 라우라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눈을 의심했습니다. 회사 동료인 호르헤(Jorge)가 생뚱맞게 정육 코너에서 고기를 썰고 있었기 때문이죠. 라우라가 다니는 회사는 스트리콘(Strycon)이라는 엔지니어링 회사로, 고기를 파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합니다. 스트리콘에서 송유관을 디자인하는 호르헤는 라우라와 팀은 다르지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유능한 디자이너였습니다.
‘쟤 여기서 고기 써는 칼 들고 뭐 하는 거지?’
어쨌든 라우라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크게 흔들며 아는 체를 했습니다. 하네스에게는 “저 친구 호르헤라고 나랑 같은 회사 다녀.”라고 설명을 덧붙이며.
하네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습니다.
“호르헤라니 무슨 소리야.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 윌리암이야.”
하네스가 아는 윌리암은 정육 코너에서 열심히 일해서 인정을 받은 직원입니다. 잠잘 때 말고는 늘 여기 마트에서 일하는데, 스티로콘에 다니는 사람이라니 하네스가 어이없어할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우라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르헤와 너무 똑같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냐, 호르헤 맞다니까? 내 친구 호르헤라고.”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기는 했습니다. 분명히 호르헤인데, 라우라를 못 알아보는 겁니다. 손님들이 잠시 없는 틈을 타, 정육 코너의 그 남자는 카운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네스와 포옹을 하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하네스는 라우라에게 윌리암이라며 이 남자를 소개시켜줬습니다. 분명 호르헤인데 말이죠!
라우라는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잘못 봤다는 하네스의 핀잔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라우라는 생각했습니다.
‘아, 아마 호르헤는 몰래 부업을 하는 건가 봐. (회사 동료들에게) 부업 하는 걸 들킬까 봐 걱정돼서 아예 이름도 바꾸고 이 일을 하고 있던 거구나. 고기 살점과 피가 묻은 앞치마에 저 하얀 모자가 부끄러웠던 걸까? 안 그래도 되는데…’
호르헤와 꼭 닮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을 거라는 시나리오보다 호르헤가 다른 사람인 척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 쪽이 아마 라우라에겐 더 납득할 만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피부색이나 광대뼈처럼 눈에 잘 띄는 부분뿐 아니라, 전반적인 몸집, 골격, 머릿결, 입 모양까지 어느 구석을 뜯어봐도 윌리암이라는 저 남자는 영락 없는 호르헤였으니까요.
다음 월요일, 라우라는 회사에 가서 호르헤에게 이틀 전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정말 너랑 똑같이 생겨서 난 끝까지 너인 줄 알았다니까?”
호르헤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자기에게 까를로스(Carlos)라는 이름의 쌍둥이가 있기는 한데, 이란성이라 자기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고 말이죠.
지금 돌이켜보면, 호르헤가 라우라에게 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사실 호르헤의 삶과 가족에는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저 설마 그럴 거란 생각을 쉽사리 못한 탓에 25년 전 일어났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던 것뿐이죠. 등잔 밑은 언제나 어두운 법입니다.
사진, 그리고 베일을 벗는 진실
한 달 쯤 뒤, 라우라의 도움으로 하네스는 스티로콘의 기안 부서에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하네스는 회사에서 라우라의 동료인 호르헤를 직접 보고 나서야 라우라가 왜 한 달 전에 윌리암을 보고도 그가 호르헤라고 철석같이 믿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둘은 갈색 눈동자와 같이 외모가 닮았을 뿐 아니라, 웃음소리, 팔자걸음, 풍기는 인상까지 정말 비슷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호르헤와 아직 충분히 친해지지 않은 하네스는 호르헤에게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는 말을 차마 못 했습니다. 대신 호르헤의 사진을 윌리암에게 보여줬죠. 윌리암도 정말 신기한 일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호르헤의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이런 우연이 다 있냐”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하네스는 여섯 달 뒤 다시 직장을 옮기면서 스트리콘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호르헤에게 끝내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죠. 남자친구의 사촌인 윌리암을 만날 때마다 호르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고민하던 하네스는 마침내 2014년 9월 어느 날, 라우라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윌리암의 사진을 첨부하며 하네스는 라우라에게 호르헤가 이 사진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라우라가 호르헤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사진을 보여주자 호르헤는 깜짝 놀랍니다.
“뭐야, 이 사람 완전 나잖아!”
사진 속 윌리암은 콜롬비아 국가대표 축구팀 유니폼인 노란색 저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온 국민이 열성적인 축구팬인 콜롬비아이기에 호르헤도 종종 입은 적이 있던 바로 그 국가대표 유니폼이죠.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둘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사진 잘 나왔네!”
지나가던 동료가 호르헤가 바라보던 사진을 보더니 말을 건넵니다. 그 동료도 사진 속 인물이 호르헤가 아니라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호르헤는 사진이 담긴 라우라의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사진을 보고 나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호르헤는 라우라를 데리고 사무실 한편에 있는 탕제실로 가 마주 앉았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봐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아빠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던 걸까? (아빠가 같은) 형제라면 닮은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지.’
호르헤의 아빠는 집에 잘 얼굴을 비치지도 않았던 터라 그럴 법한 일이었습니다. 호르헤는 자기 핸드폰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해 윌리암의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습니다. 정육점에서 일할 때 입는 작업복을 입은 모습은 자신이 제도실에서 실험복을 입고 있을 때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호르헤는 사진을 더 크게, 선명하게 보려고 아예 컴퓨터 앞에 앉아 페이스북에 접속했습니다. 윌리암이 친구와 함께 작은 유리잔을 들고 있는 사진을 확대했을 때, 호르헤는 핸드폰으로 봤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윌리엄 옆에 서 있는 친구도 너무 낯이 익었던 겁니다. 아래부터 찬찬히 훑어봤을 때 볼록한 배가 어쩐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 친구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호르헤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까를로스가, 자신의 쌍둥이 형제인 까를로스가 윌리암 옆에 서 있던 것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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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에겐 행복일지 불행일지 모르겠지만 이야기 자체는 정말 흥미진진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