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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나 카르타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

우리말로 대헌장이라고 번역되는 마그나 카르타를 1차원적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큰 양피지 한 장에 알아보기 어려운 중세 라틴어 3,500여 단어가 빼곡히 들어찬 문서. 물론 이 문서 한 장이 현대 민주주의와 서양사에서 갖는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죠. 13세기 왕의 폭정에 분개한 귀족 40명이 작성한 마그나 카르타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배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법에 의한 통치를 천명한 문서로 알려졌습니다. 17세기 권리 장전(Bill of Rights)과 이어 제정된 미국 헌법은 마그나 카르타에 기초를 둔 것으로 평가 받는데, 특히 미국에서 마그나 카르타는 법학자, 판사들에게 거의 숭배의 대상이나 다름 없을 정도입니다. 지난 2007년 억만장자 루벤스타인(David M. Rubenstein)은 (수정본인) 마그나 카르타를 약 230억 원에 사들인 뒤 영구 임대 형식으로 국립 기록물 보관소(National Archive)에 기증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지난 15일은 마그나 카르타 문서가 이 땅에 나온 지 꼭 80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존 왕이 귀족들의 요구에 굴복해 옥새를 찍은 것으로 알려진 윈저(Windsor) 근처의 러니미드(Runnymede) 초원에서는 마그나 카르타 800주년을 기리는 성대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미국 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는 변호사 500명을 선발해 행사에 참가시켰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자발적으로) 참가했습니다. 로버츠(John G. Roberts) 대법관은 “800년 전 이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첫 걸음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유명한 영국의 판사 데닝 경(Lord Denning)은 마그나 카르타를 “전제 군주의 폭정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천명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헌법 문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평가를 받는 위대한 문서 마그나 카르타를 보는 다른 시각을 소개하는 게 다소 무례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그나 카르타가 실은 별 것 아닌 문서라고 평가하는 법률가, 법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마그나 카르타와 그를 둘러싼 역사적인 해석이 후대에 와서 왜곡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기록되고 역사가 된 것이 아니라, 훗날 생각해볼 때 일어났을 법한, 혹은 일어났어야 할 일들을 만들어 이야기를 짜맞췄다는 겁니다. 이 견해를 토대로 마그나 카르타를 재해석하면, 마그나 카르타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중한 원칙들(죄를 확정짓고 판가름하는 건 법원의 고유한 권한이라든가 국가가 임의로 개인을 감금할 수 없다든가)의 토대가 되었다는 주장도 재고돼야 합니다.

이스트 앙글리아 대학(University of East Anglia)의 빈센트(Nicholas Vincent) 교수는 “영어권 국가에 사는 우리는 자유를 사랑하고 지난 800년 동안 (전제 군주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 아래 자유를 누리며 살아왔다는 인식이 마그나 카르타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합니다. 얼마 전 뉴요커에 실린 글을 보면, 사실 마그나 카르타의 효력 그 자체는 오래 가지도 못했습니다. 문서가 서명되던 순간이 역사적으로 큰 전환점이었던 것도 물론 아니고, 그 조항을 아무도 지키지 않았죠. 존 왕은 문서에 서명하자마자 교황에게 압력을 넣어 이내 서명의 효력을 무효화해버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전을 막은 죄일지 모르겠지만, 존 왕은 이후 머지 않아 이질에 걸려 사망합니다)

또한 이 문서는 40명의 권세가 높았던 귀족과 최고 통치자였던 왕 사이의 협약입니다. 당연히도 기층 대중과 서민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엮기가 상당히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일단 마그나 카르타는 13세기 동안 여러 차례 개정됩니다. 1297년에 최종본이라 할 만한 문서가 확정됐는데, 앞서 언급한 루벤스타인이 사서 기증한 마그나 카르타가 이 1297년 판입니다.

이렇게 당시에는 별 의미가 없었던 마그나 카르타는 몇 세기 후 식민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헌법을 제정하던 시절에 이르러 다시금 법치의 상징이자 위대한 문서로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예일대학 법과대학의 아마르(Akhil Amar) 교수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사건은 나중에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주목을 받고 없던 내용이 끼어들고 살이 붙고 붙어 대단히 중요한 문서로 추앙 받는 일이 영미법 문화에서 종종 있습니다. 마그나 카르타도 그런 예라고 볼 수 있겠죠.”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절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1215년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서였고,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사건이었다는 게 맞는 해석이라고 해도 그 뒤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버드대학 법과대학의 펠트만(Noah Feldman) 교수는 “그 문서의 중요성을 그 문서가 당시 미쳤던 영향만 갖고 판단하려는 건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존 왕과 귀족 사이의 서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뒤로 이 헌장이 법에 의한 지배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해온 역할과 유산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상황을 몰라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겠죠.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법에 의한 지배 하면 모두가 대헌장을 떠올릴 만큼 마그나 카르타는 중요한 상징이 됐습니다. 이 상징으로써의 기능과 역할을 고려하면 마그나 카르타에 지금과 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게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냉소적인 변호사들도 마그나 카르타에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이가 많습니다. 미국 변호사협회장 허바드(William C. Hubbard)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그나 카르타가 미국 법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법은 왕 혹은 통치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피지배층인 일반 사람들로부터 나온다는 게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이자 근간입니다.” 성문헌법이 아예 없는 영국에 비해 미국에서 마그나 카르타가 더 사랑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달 로버츠 대법관은 판사가 선거 자금을 모으거나 받아서는 안 된다는 플로리다 주 법에 대해 합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내리며 마그나 카르타의 구절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허바드 회장은 8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의미 있는 구절이 가득하다는 것 자체가 마그나 카르타의 가치를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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