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 외에 교수님을 찾아가 모르는 걸 물어보고 조언을 받고 싶은데, 교수님 집무실이 없어 주차장에 주차된 차 트렁크 옆에 서서 상담을 해야 할 때. 생물학 박사 과정에 지원하고 싶어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께 추천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하려 이메일을 보냈는데 해당 주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에러 메시지가 떴을 때. 그리고 오후 강의 시간에 이상하게 교수님이 어딘가 걱정되는 일이 있는지 강의에 집중을 못하셨는데, 알고 보니 그 걱정이 교통비로 낼 돈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었을 때. 위의 사례들은 극단적인 뉴스거리가 아닙니다.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시간강사가 늘어나면서 미국 대학에서 어느덧 종종 일어나는 일이 됐습니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들은 모두 높은 임금을 받고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년을 보장 받은 교수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미국 대학에서 정년을 보장 받았거나 정년 심사를 받을 교수들은 전체 교수의 약 1/4에 불과합니다. 단순히 확률적으로 살펴봐도 학생들은 정교수 혹은 정년 심사를 몇 년 안에 받게 될 교수들보다 시간강사, 겸임교수들에게 수업을 들을 확률이 높은 셈입니다. 전체 교수의 절반은 시간강사(adjunct professor), 혹은 계약직 강사(contingent faculty)입니다. 글쓰기 기초교양 강좌부터 대학원 세미나 수업까지 이들은 사실상 대학에서 개설한 모든 과목을 가르치고, 정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강의계획서를 짜고 교재를 주문하고 시험 문제, 기말 과제를 내 학생들을 평가하고 학점을 줍니다. (나머지 1/4은 다른 분야에서 주업이 있고, 부업으로 강의를 하는 겸임 교수입니다.)
시간강사가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해서 받는 돈의 중앙값(median)은 300만 원 남짓($2,700)입니다. 지난 2013년 NPR 보도에 따르면, 시간강사가 받는 돈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2,500만 원($20,000~$25,000)이고, 올해 3월 퍼시픽 스탠다드가 시간강사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많은 이들의 연봉이 2만 달러에 못미쳤습니다. 소득이 부족하다 보니 시간강사 가운데 저소득층 의료보험(Medicaid) 혜택이나 저소득층 식재료 쿠폰(Food Stamp)을 받아 생활하는 이들도 1/4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한 대학교에서 주당 30시간 이상 일하지 않으면 고용주(학교)가 의료보험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시간제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시간강사들 가운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급여 외에도 시간강사의 삶은 여러 모로 팍팍합니다. 대부분 학교가 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쯤 전에 다음학기 강의 계획을 짜고 정교수들이 가르칠 수 없는 과목을 메우려 시간강사를 고용합니다. 학교의 요구에 맞춰 강의계획서 짜고 필요한 교재 골라 주문하는 데 한 달은 충분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한 학교가 아니라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학과의 주요 회의나 행정 관련 현안을 결정하는 데 어떤 의견도 내지 못하고,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의 주요 학회에 참석하려면 빠듯한 살림을 쪼개 사비를 들여야 합니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비용 절감에 나선 많은 대학들은 정교수를 줄이고, 시간강사를 늘려 왔습니다. 예산이 줄어든 주립대학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시간강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언론이 여러 차례 이미 다뤘습니다. 그런데 시간강사가 이렇게 어렵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환경이 학생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요? 이 문제는 대개 간과돼 온 주제입니다.
확정적인 답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강사 권익단체인 신임 교수 단체(New Faculty Majority Foundation)의 회장 마이스토(Maria Maisto) 씨는 시간강사들이 제도적인 제약과 열악한 환경 탓에 수업을 잘 준비하지 못하고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합니다. 같은 내용의 강의를 준비하는 데 정교수들보다 시간도, 자원도 훨씬 덜 주어지는 조건 속에서 시간강사들은 가까스로 기준에 맞춰 강의를 하고, 그러다가도 강의 준비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고 연구를 하는 데 쓸 돈이 없어 강의의 질이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학생들이 수업 내용에 대해 질문하거나 다른 조언, 상담을 받고 싶을 때도 시간강사들은 난처해집니다. 일단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강의를 하는 탓에 학생들에게 강의 외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시간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 학교에서 시간강사들에게 연구실 공간을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학생들을 구내 식당이나 커피숍, 도서관 로비에서 만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LA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올슨(Judy Olson) 씨는 예전에 연구실도 없고,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해줄 때 필요한 노트, 자료들이 다 차 트렁크에 실려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학생을 주차장에 있는 자기 차 트렁크 옆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연구실 공간만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 시간강사들은 학교 규정이나 행정 관련 회의에서 배제됩니다. 그런 건 정교수들의 몫이죠. 추천서를 써줄 때도 어느 학교 어디 학과 교수라는 서명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시간강사들은 수업시간 외에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셈입니다. 강의 외에 지금 열거한 사항들-추천서, 학생 상담, 행정-은 시간강사들의 계약 조건에 보통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수는 다 똑같은 교수”라고 생각합니다. 정교수든 조교수든 강사든, 강의실에서는 모두 교수님이기 때문인 데다가 학교가 정교수, 시간강사 비율 같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런 자료가 있더라도 공개하지 않겠지만요. 궁극적으로는 교육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인 학생, 학부모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단한 연대를 말하는 게 아니라) 교육의 질 차원에서 보더라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시간강사가 늘어날수록 비싼 등록금에 걸맞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셈이 되니까요. 대학의 간판, 평판보다도 실제 교육의 질을 꼼꼼히 따져본다면, 늘어나는 시간강사들의 어려움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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