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발표와 함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 라즈 체티(Raj Chetty)와 나타니엘 헨드렌(Nathaniel Hendren)의 주거 지역과 가난한 아이의 계층 이동에 관한 연구 덕분에 우리는 미국 내에서도 아이가 어떤 지역,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훗날 경제적 지위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볼티모어, 디트로이트, 올랜도, 시카고 등 인종, 계층에 따른 분리가 뚜렷하고 불평등이 심각한 대도시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범죄율이 높고, 공교육은 사실상 무너진 지 오래됐고, 자녀 교육에 신경쓸 여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한 한부모 가정 비율이 높은 것이 그것이죠. 이런 지역에 살던 가난한 아이들이 반대로 교육 수준이 높고, 상대적으로 부의 수준이 비슷한,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특히 어렸을 때) 이사를 가면 경제적으로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확률이 눈에 띄게 높다는 것이 체티 교수와 헨드렌 교수의 연구의 골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쩌면 간과하고 지나칠지 모르는 교훈이 더 있습니다. 가난한 아이가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가서 누리게 될 혜택 말고, 반대로 부유한 가정의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지내게 되면 어떤 혜택을 얻게 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이 미국 전체 가정에서 상위 25%에 해당하는 집의 아이도 마찬가지로 좋은 환경을 갖춘 이웃 속에서 자랐을 때 커서 경제적으로 더욱 넉넉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주의 페어팩스 카운티(Fairfax County, VA)가 대표적인 좋은 동네인데, (부유한 집 아이도)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경우 미국의 평균 지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을 때보다 26살이 됐을 때 기대소득이 17%나 높았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환경은 부유한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익한 것입니다. 체티 교수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라고 해서 반대로 부유한 아이들이 누려야 할 경제적 기회가 상쇄되거나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흔한 편견들 가운데 가난한 아이들이 유입되면 기존의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우려는 가난한 아이들을 정책적으로 도와주려는 시도를 무산시키는 갖가지 이기주의로 발현되기도 하죠. ‘공부 잘 하는 아이들끼리 경쟁하던 환경에 공부도 잘 못하고 집에 돈도 없는 아이들이 와서 물을 흐린다’, ‘결국 좋은 학교는 인종적, 계층적 다양성을 추구하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면 더 이상 좋은 이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 몰지각한 사람들 입에서만 나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거나, 적어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깃하고 쉽사리 수긍할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주장들이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은 결국 기회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인식입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주려면 어쩔 수 없이 기존 부유한 아이들이 누리던 기회를 희생하고 나눠야 한다는 가정이죠. 하지만 체티 교수는 연구 결과 그런 경향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잘라 말합니다.
뉴욕시 외곽에 있는 뉴저지 주 버건 카운티(Bergen County, NJ)도 좋은 동네 가운데 하나인데,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어렸을 때 이곳으로 이사를 가서 자라게 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26살이 됐을 때 소득이 평균 14% 높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부유한 집 아이는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서 자라난 부유한 집 아이보다 26살이 됐을 때 소득이 평균 7% 높았습니다. 소득 차이의 폭은 상대적으로 좁을지 몰라도 분명 혜택을 같이 누리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발견은 그리 놀라울 만한 일은 아닙니다. 가난한 아이나 부잣집 아이나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 건전한 이웃, 안정적인 가정 등 성공을 위해 필요로 하는 건 똑같기 때문입니다. 헨드렌 교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유익한 환경을 제공하는 동네가 부유한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측정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가난한 아이들이 부유한 이웃으로 이사를 갔을 때 기존에 있는 부유한 집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지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는 아직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번 연구 결과로 어느 정도 추려낼 수 있었습니다.” (Washingt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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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귀한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