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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허용은 낙태 합법화와 다릅니다

에이프릴과 제인은 10년 간 동거한 연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미시건에서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아이를 원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입양을 할 수 없고, 입양을 한대도 한 사람이 죽었을 때 나머지 가족들이 함께 살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즈페와 토머스는 동성혼이 인정되는 뉴욕에서 결혼했지만, 테네시로 이사를 간 후에는 관계를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일부 주가 실시하고 있는 동성혼 금지 정책을 폐지하게 해달라고 법원에 소원을 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앞둔 지금, 법원이 동성 커플들의 손을 들어줄거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민주주의의 퇴보라며 개탄할지도 모릅니다. 결혼은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의 영역이었으니까요. 만약 주민들이 주 정부의 정책을 바꾸고 싶다면 선거에서 자신들의 뜻을 대변할 사람을 뽑으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큰 사안은 법정에서 법관들의 판결로 해결하는 것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판결을 통해 헌법에 반하는 법을 폐지하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기는 하지만, 미국 법원은 이 권한을 남용했던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1973년 미국 전역에서 임신중절을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이 그 예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사생활에 대한 권리를 들어 임신중절을 합법화했지만, 사생활에 대한 권리는 헌법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었으니까요. 이코노미스트는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지만, 당시 법관들은 법을 해석하기보다는 만들어내는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동성결혼 허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한 번의 직권남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건은 “로 대 웨이드”라기보다 학교에서의 인종분리를 철폐하도록 했던 “브라운 대 교육청”건에 가깝습니다. 미국 헌법에는 분명 모든 사람이 법에 의해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으니까요. 이성애자는 결혼을 할 수 있는데 동성애자는 할 수 없다면 이는 분명 “법에 의한 동등한 보호”에 위배되는 것이니까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강력한 근거입니다.

법원이 동성 커플들의 손을 들어주면 분명 반발이 있겠지만, “로 대 웨이드”건에서처럼 오래가는 종류(지금까지도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자는 이 판결을 뒤집을 대법관을 지정하겠다는 맹세를 해야합니다)는 아닐 겁니다. 동성혼은 낙태와 다릅니다. 동성 커플에게 결혼을 허용한다고 해서 이성 커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니, 어려운 트레이드오프가 없죠. 피해자도 없습니다. 낙태반대론자들은 피투성이 태아의 사진을 흔들며 거리로 나섰지만, 동성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면에 내세울 피해자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이런 추세를 저지하려고 나섰지만, 아마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할 겁니다. 오히려 어차피 질 싸움이 자신들의 손을 떠나 법원으로 간 것에 내심 안도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많죠. 미국의 여론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크게 달라졌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리버럴한 주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현재 가장 보수적인 주의 시각보다 더 부정적이었으니까요. 미국의 대법관들도 역사적인 소명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고, 후세에 부끄럽지 않을 판결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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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ope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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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아주신 링크 잘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항상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글만 번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분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일반적 의미의 성역할이나 가정 내에서의 성역할 역시 모두 상대적, 유동적인 것입니다. 남녀 커플을 부모로 둔 사람이 가정 내에서 부모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성장 과정에서 문제를 겪었다고 해서 곧장 이성애자 간의 결혼이 문제라고 한다면 비약이 아니겠습니까? 동성 부모 가정도 백이면 백 다른 모습일 겁니다. 다른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요.

      • 답글 감사합니다. 성역할이 상대적, 유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가치이지요. 그런데 그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동성 커플에게 길러진 자녀들 중에서도 그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링크된 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동성 부부 사이에서 길러진 자녀들은 그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다시 말하면 아파도 아프다고 얘기할 수 없는 묘한 억압 가운데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사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가정의 경우, 아빠가 없어서, 엄마가 없어서, 혹은 부모가 이혼했기 때문에, 자신이 고통받고 아프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성 커플 사이에 있는 자녀의 경우 나의 부모가 동성 커플이기 때문에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는 안타깝게도 일종의 억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네 그런 부분이 전통적인 가정에는 없었던 특수한 종류의, 어쩌면 현 상황에서는 이중의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어려움이라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빠" 역할을 하는 "남자" 어른이 꼭 필요하다는 가치관도 남성/이성애자 중심 사회에서 생겨난 산물이며, 앞으로는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아빠가 이혼해서 내가 불행해"라는 말도 이혼은 했지만 부모 노릇을 잘해보려고 노력한 선의의 부모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있는 말이 될 수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께 사는 것이 불행한 두 사람에게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나, 이혼할 가능성이 있으니 결혼을 못하게 하는 일도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결혼을 택하고 싶은 동성애자들에게 아이가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결혼과 양육을 못하게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링크해주신 기사의 주인공 같은 개별적 사례에 마음이 아프지만, 과도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라 생각하고, 그래도 세상이 누구에게나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디스쿠스 토론은 처음 해 보는데, 재미있네요.

            1. 링크된 기사의 주인공(바윅 양)의 아픔에 공감해주신 용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2. 동성 결혼의 피해자가 없다는 기자님의 원 기사 내용은 충분히 반박된 것으로 간주해도 좋겠지요?

            3. 그렇다면 기자님의 다음 주장은 당분간 피해자가 있더라도, 변화를 위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을 위해 (그것이 당분간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가치에 반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4. 아빠 역할을 하는 남자 어른이 꼭 필요하다는 가치관이 이성애자 중심 사회에서 생겨난 산물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가치관이 과연 얼마만큼 바뀔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가치관은 사회의 주류 가치관으로 대접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자녀는 남녀의 생물학적인 결합에 의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생물학적인 생산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바윅 양과 같은 본능적 갈구(아빠에 대한 갈구)가 남아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네, 말씀하신대로 엄밀한 의미에서 동성 결혼 제도의 피해자가 없다는 것은 반박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이나 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해가면서, 또 공익과 사익의 균형점을 찾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떤 개인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것이 개인의 선택과 권리에 대한 문제일 때는 더더욱 그렇고요. 생물학적인 남녀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한부모 가정, 이혼 가정의 자녀가 불행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싱글 가정이나 이혼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동성 부부의 결혼과 양육도 금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분의 사례와 반대로 동성 부부 아래서 전통적인 가정의 자녀보다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한 사례도 여럿 찾아볼 수 있겠지만, 이 역시 그 동성 결혼 합법화의 근본적인 정당화 수단이 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원글의 저자가 말한 "피해자"라는 말의 의미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맥락 속에서 생각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낙태반대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말도 못하고 죽어간 태아를 피해자로 전면에 내세웁니다. 낙태가 실시되면 태아의 사체는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명백히 피해자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고, 그 이미지가 인상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일견 효과적인 운동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동성혼에 피해자가 없다는 말은, 이처럼 뚜렷하게 운동의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피해자"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 동성 부모 때문에 한 개인이 불행해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따져야 하는 경우와는 낙태를 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죽은 태아"는 동일한 선상에 놓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요소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럼 가난한 사람이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아이를 낳으면 안되는 것인가 등등 반박의 여지가 커지고, 동성 부모 아래서 행복하게 자란 사람들의 사례를 더 많이 모아 제시하면 뒤집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원저자가 낙태 합법화와 동성 결혼 법제화가 이렇게 다르다, 하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유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불행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에서 피해자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요.

          • 1. 민주주의 사회에서 타협과 양보가 있어야 한다는 기본 논지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타협과 양보는 양자가 민주 사회에서 최소한의 동등한 위치를 확보했을 때에 이야기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적어도 자녀가 어릴 때에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부모의 자유를 위해 자녀의 고통에 대해 눈감을 수 있다는 논리는 전형적인 갑을관계의 논리라고 생각됩니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동성 커플이 자녀를 양육해도 되는가는 동성 커플이 혼인을 인정받아도 좋은가와는 또 다른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저항할 힘이 없는 제3자가 관여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2. 원 기사에서 언급한 피해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부연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이해되었습니다.

        • 아빠가 없거나 엄마가 없는 경우, 그리고 부모가 이혼한 경우에도 자신이 그 사실 때문에 고통받고 아프다는 사실을 표현하는게 금기시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강력한 억압은 무엇이 억압인지를 정의하는 것이라는 한겨레 21 안수찬 편집장님의 글이 기억이 나네요.

          • 답글 감사합니다.

            1. 이야기의 주인공인 바윅 양의 설명의 따르면, 동성 부부에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가 더 금기시 된다고 합니다. 아빠와 엄마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레벨의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바윅 양의 개인적인 감정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그렇게 알겠습니다. 아래 eyesopen1 님 수준의 공감에 다다르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2. 안 편집장님이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사안에 억압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자는 뜻은 아니겠지요? 만일 그런 맥락이라면, 여기서 우리는 논란 자체를 시작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저 효석 님께서 제가 언급한 억압이 억압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인용하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 동성 부모를 가진 아이가 그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말에 의해 그 동성 부모가 슬퍼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겠죠. 저는 편부 편모 슬하의 아이 역시 자신이 그 고통을 표현했을 때 슬퍼할 사랑하는 가족을 고려해 이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구요. Song Y. Lee 님께서는 이 중 전자의 고통이 더 크고, 따라서 전자의 고통만이 억압이다라고 말씀하셨기에 무엇이 억압인지를 누가 정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가져온 말입니다. 안수찬 편집장님은 '억압'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었죠. 좋은 글입니다. http://h21.hani.co.kr/arti/reader/together/40782.html

          • 1. 잘 읽어 보시면 바윅 양은 부모가 슬퍼할 것을 배려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저는 전자의 고통만이 억압이다라고 표현한 적은 없습니다. 레즈비언 커플 슬하에서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표현할 수 없었던 바윅 양 경우와 같은 억압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반론을 제기하실 때는 실수로라도 상대방의 기본 논지를 흐트리지 않도록 노력해주시면 좋겠습니다.)

            3. 누군가 폭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억압이라는 틀에 다시 적용하고 싶으셨다면, 그렇게 이해하겠습니다.

          • 억압이 중요한게 아니죠. 윗 댓글에서 '동성 커플에게서 길러진 자녀의 고통이 편부편모에게서 길러진 자녀의 고통보다 더 크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 곧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하기위해 전자에 대해 억압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이구요.

            더 정확하게는, 하신 말씀을 그대로 쓰자면, '동성 커플에게서 길러지는 자녀는 고통을 표현할 수 없지만 편부편모 슬하에서 길러진 자녀는 그 고통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곧, 동성 커플에게서 길러진 자녀 중에도 고통을 표현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사실 바윅양도 어찌보면 이를 표현한 셈이지요 - 편부편모 슬하에서 길러진 자녀 중에도 이를 표현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주장은 사회학 및 심리학적 방법을 통한 '양적 비교'를 통해서만 진위가 갈릴 수 있습니다.

            즉, 저는 이 두 경우에 대해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자를 이혼의 반대논거로 삼던 시대는 꽤 오래전이며 이제 이 주장은 사회적 강제가 아닌 개인의 가치판단으로 내려온 상태이구요. 즉, 남은 자녀의 고통 때문에 이혼이 사회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같은 논리로 전자 - 바윅양 - 의 예를 들며 그것을 동성부부가 아이를 입양해서는 안되는 이유라고 하는 것은 얕은 생각이라는 말이지요. 동성부부에게 입양되어 행복하게 사는 아이의 예도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연구를 통해 동성부부에게 입양된 아이가 삶의 질이 상당히 낮다는 것이 보여진다면 그 때에는 다시 이를 논의할 수 있겠지요. 참고로 그 값은 보통 가정의 아이의 삶의 질과 비교해서는 안되며, 다른 이성애 가정에 입양된 아이의 삶의 질, 혹은 결국 입양되지 못해 기관에서 자라난 아이의 삶의 질과 비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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