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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재벌 기업의 귀환, 사실일까?

1997~1998년 아시아가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IMF는 서구식 처방전을 내렸습니다. 아시아 특유의 대기업 체제는 전문 영역 없이 마구잡이로 확장되고 복잡하게 뒤얽혀 비효율적이니 점차 서구식 자본주의 체제로 변화할 것이라고 모두 예상했지요. 재벌이나 정부 주도가 아닌, 투자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기업 체제가 되야한다고요.

그러나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 시각은 완전히 틀렸던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아시아 금융시장의 70%는 공기업이나 한가문이 보유한 재벌가의 대기업 계열사가 차지합니다. 수익의 90%를 주주에 돌려주는 미국 회사나 75%를 돌려주는 유럽회사와 달리 아시아 회사는 기껏해야 30% 상당만을 배당금으로 환원합니다. 2014년 애플의 자사주 매입액은 (자사주 매입은 주주 환원 정책의 일환) 포츈 500 기업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큽니다. 아시아 기업은 아직도 주주가치 극대화가 기업의 목표로 자리잡지 않았습니다.

서방의 시각에서는 아시아 기업들이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의 공기업 개혁을 예로 들어보죠. 덩샤오핑 정권에서 번성한 재벌기업 CITIC 는 중국 출신의 타이 재벌 CP와 일본의 무역관 Itochu에 주식을 매각했습니다. 두 회사는 1970년대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었죠. 이 연합에 얽힌 지분 보유관계나 전략적인 사업 목표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에너지 거인 Sinopec 이란 기업은 최근 공기업, 창업가, 명의 회사로 이루어진 콘소시엄에 180조 원 에 마케팅 부문을 넘겼습니다. 이 컨소시엄은 정체가 명확치 않으며 중국 정부가 관리하는 영역이죠.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떠오른 일련의 스캔들은 서구식 자본주의 또한 완벽치 않다는 이미지를 낳았습니다. 게다가 서부의 떠오르는 테크 스타들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지요. 중국의 e커머스 업체인 알리바바는 복잡한 지배구조로 투자자들의 의사결정권이 사실상 전무한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실리콘밸리에 떠오르는 거인들과 아시아의 오래된 기업 구조를 섞어놓은 듯 합니다. 인도에서는 여전히 재벌이 경제를 지배하고, 대표적인 재벌인 릴라이언스(Reliance) 그룹은 방송국을 매입하여 정치적 영향력도 확보했습니다. 타타 그룹은 국영화되었던 항공사 산업에 뛰어들었지요.

한국의 재벌도 과거로 돌아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그룹은 강남으로 본사를 이전하는데 10조 원을 투자한다하여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대한항공의 맏딸은 승무원의 땅공 서빙에 크게 시비를 걸은 끝에 지난 달 징역까지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재벌가 가문의 오만방자함과 권력 승계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지요.

아시아 기업들에 그들만의 경영법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자들은 허술한 법률 체계와 자본 시장이 대기업이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게 놔두는 것인가 오랜 기간 토론을 벌여왔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시스템이 지연에 기반한 정실 인사를 낳는다고 주장하는 반면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기업 시스템이 장기적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한다고 평사하죠. 이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아시아 경제가 성장하며 아시아식 기업관이 전세계에 발휘하는 영향력도 커졌다는 것 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시아적인 기업관이 확장될 것이라는 시각은 아시아가 서구를 그대로 쫓아올 것이란 믿음 만큼이나 자기 만족적인 진단입니다.

아시아 기업은 크게 세가지 요인에 의해 점차 변화할 것입니다. 수명, 주주의 요구 증대, 글로벌화가 그 주요 요인이지요. 첫째, 수명은 재벌가 총수가 언젠가 세상을 뜰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대륙 최고 재벌인 이가싱은 86세에 자식들에게 제국을 물려주면서 부동산, 유통, 통신 기업 부문을 쪼갰습니다. 기업 분할 후 기업 전체의 가치는 12 조원이나 올랐습니다. 지금, 홍콩의 5대 재벌의 총수 평균연령은 82세입니다. 한국의 삼성이나 현대도 상속을 준비하기 위해 사업부문 정리에 나섰습니다.

둘째, 점점 목소리가 커져가는 주주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합니다. 이를테면 현대가는 본사 증축에 큰 돈을 쓴 후 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습니다. 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하며 경영을 하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 않죠. 특히 큰 기관들의 요구는 무시하기 어렸습니다. 이번 달 한국국민 연금공단은 현대가의 임원 임명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국민연금 공단 등의 기관이 더 많은 수익을 내고 투자자에 환원하도록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지요.

글로벌화는 얼핏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지 모르나, 세계적으로 성공하려면 특정한 분야에 집중하여 규모의 경제학으로 성공하는 것이 사업을 다각화 시키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아시아의 보험회사인 AIA나 대만의 칩 제조회사 TSMC 등이 대표적이죠.

결과는 이가싱의 재벌 그룹처럼 재벌가 가족이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나 투자자와 소통하고 글로벌 성장에 힘을 쏟는 기업이 될 것 입니다. 아시아식 기업구조가 서구식 자본주의와 결합하리라는 아이디어는 말도 안되게 들리나, 아시아식 기업이 건재하리라는 의견도 십년전에는 마찬가지로 말도 안되게 들렸습니다.(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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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sangju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열린 인터넷이 인류의 진보를 도우리라 믿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낙천주의자 너드입니다. 주로 테크/미디어/경영/경제 글을 올립니다만 제3세계, 문화생활, 식음료 관련 글을 쓸 때 더 신나하곤 합니다. 트위터 @heesangju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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