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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법관의 참회: 돈에 휘둘리는 미국 법원

(이글을 쓴 수 벨 코브는 지난 30년간 법관으로 제직했으며 2007년부터 2011년꺼자 앨라배마주 대법원의 수석재판관(chief justice)를 지냈습니다.

저는 제 직업에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왠지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저는 앨라배마에서 수석재판관을 역임한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입니다. 정말 어렵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석재판관 선거에서 이기 위해 정말 비싼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저는 재판관 선거를 위해 2백6십만 달러(한화 약 30억 원)의 자금이 필요했고, 이 돈이 어딘가에서 나와야만 했습니다. 제 경쟁자는 저보다 많은 돈을 모금했고 총 5백만 달러를 모았죠. 판사가 선거 자금 모금을 한다는 건 정말 어색하고 불편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금 없이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런 선거가 일반 대중에게 얼마나 창피하게 보일까였습니다.

2006년 선거가 끝나고 이틀 후, 전 딸 케이틀린과 함께 학교 수학여행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한 법률전문지의 기자가 건 전화였습니다. 아마도 ‘알라바마 최초의 여성 수석재판관이 된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난 25년간 40여개 지방법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주 대법원을 개선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기자의 질문은 이랬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선거 자금이 쓰인 수석재판관 선거에서 이긴 소감이 어떠십니까? 그리고 모금 내용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대중에게 확신을 줄 수 있을까요? 법원이 돈에 휘둘리지 않는 곳이라는 걸 어떻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키실 것인가요?”

정말 당황했습니다. 그 이후 4년 반을 수석재판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제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지만, 동시에 수석판사가 되기 위한 과정과 그 구조가 계속해서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왠지 이런 시스템의 덫에 걸린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선거자금을 지원해주었다는 이유로 특정 정당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일이 결코 없습니다. 하지만 재판관이 되려는 사람들은 가끔 뭔가 비도덕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저도 포함해서요.

당시 기자가 물었던 질문은 적절했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법원이 돈에 휘둘리는 곳이 아니라고 어떻게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선거 운동 자금을 모으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안부 전화로 시작합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요? 일은 잘 되어가시죠? 제가 전화한 진짜 이유를 얘기하기 전까지 지인과 즐겁게 담소를 나눕니다. 그러다  “제 선거를 지원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할하겠습니다”라고 얘기를 꺼내고, 돈에 대한 얘기가 나올 즈음 통화를 모금담당자에게 넘깁니다.

선거에서 돈이 중요했습니다. 특히 앨라배마에서 대법관이 되려면 최소한 몇 백만 달러의 돈이 있어야 합니다. 저와 제 경쟁자 모두 그 정도의 돈을 모았습니다. 제가 앨라배마에서 영향력이 적은 민주당 쪽이고 약체로 평가되었지만, 설문조사를 하자 제가 경쟁자를 이기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경쟁자 쪽은 선거 모금 금액을 상당히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너무 뒤쳐질 수 없었기에, 자금을 모으기 위해 최선의 방법으로 응수했습니다. 금액이 서로 터무니없이 높아졌습니다.

앨라배마 주에선 판사가 되려는 사람이 주변에 모금을 독려하는 말을 직접 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일반적인 지인 뿐만이 아니라, 업무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변호사와 기업인에게도 전화를 걸어 자금 모집을 합니다. 저도 그렇게 했고요.

선을 어디까지로 정해야 할까요? 재판에 출석하는 변호사에게 자금 모금 운동을 할 수 있다면, 이건 재판관과 변호사 모두에게 옳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제가 직접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선거활동이 과열되고 있었을 때, 제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래야만 했습니다. 다른 많은 미국 선거들이 그렇듯, 재판관 선거도 돈에 의해 압도되고 있습니다. 수석재판관이 되려는 사람은 모금행사를 꼭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금에 들어오는 돈은 작게는 개인이 낸 5달러 짜리 개인수표부터, 앨라배마 민주당 지부에서 지원받은 20만 달러, 정치활동위원회가 다양한 기업들과 법률회사들로부터 모아 기부한 63만 달러에 이르기까지 액수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돈은 다른 정치 선거를 위해 쓰이는 것과 비슷하게 텔레비전 광고와 그 광고를 위한 컨설팅 비용으로 쓰였습니다.

물론 수석재판관 선거에 나선다는 것은 다른 텔레비전 광고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광고하고 대중에게 팔아야 합니다. 제가 본 많은 광고들은 선거 경쟁자를 깍아내리기 위해 그들을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처럼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기회만 있다면 상대 재판관을 아동 성추행범이나 살인범을 풀어준 사람, 또는 그들이 당신의 옆집에 살도록 만든 사람으로 묘사하기에 바빴습니다.

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들입니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그들의 품위와 공정성에 대해 흠집을 내는 방법이 너무나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선거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법원에서 존경 받아 오던 판사에게 선거 경쟁자를 스컹크에 비교하면서 깍아내리라고 주문을 하고, 결국 그런 광고가 대중들에게 먹힙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광고가 동물의 이미지를 함께 싣거나, 상대방의 모습에 이 동물을 합성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앨라배마 어디에 살고 있더라도, 이 동물의 냄새가 아주 심해 어디서든 냄새를 피해갈 수 없죠”라는 문구를 함께 싣습니다.

저는 한때 앨라배마 주 상원의인 제프리 맥러린과 함께 일하면서 수석재판관 선거에서 이런 네거티브와 비방 선거 전략, 그리고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당파적 선거를 없애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출신 당을 불문하고, 의원들은 이런 법이 통과되는 것을 도와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공화당의 한 의원은 자신이 속한 당의 다른 의원에게 이 법안을 지지한다면 다음 의원 선거에서 큰 피해를 각오하라며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금 기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판사가 자신과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세계관에 의해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원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공명정대한 판결이라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부를 통한 투자가 나중에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재판관이 의료 소송이나 상품 소송을 회의적으로 보거나 기각시키기를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동조합의 경우, 판사가 조합을 지지해 주고 그들의 적인 대형 회사들을 보는 시선을 함께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그 반대편에 선, 투표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자신의 승리가 정의를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내리는 판결이 재판에 출두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주에 있는 모든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냥 단순하게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 뿐입니다. 이런 것이 왜 수석재판관 선거가 돈에 의해 좌우되며, 지난 2000년 미국 전역의 수석재판관 선거에서 2억7천5백만 달러라는 돈이 들어갔는지를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선거자금을 많이 기부한 사람이 재판을 받을 때, 법원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부정부패도 일어나게 됩니다. 최근 아칸소 주의 전 순환판사는 선거 운동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보험사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배심원들을 종용했다는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판사가 재판정에 자주 나오는 변호사에게 선거자금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합법적인 강탈에 아주 가까운 것입니다. 이 판사의 손에 판결이 달린 사건을 변호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기꺼이 돈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람의 본성이니까요. 어떤 변호사가 현재 그의 사건을 맡고 판사의 선거 운동에 돈을 기부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그들이 자금적 여력이 없더라도 판사의 요구에 ‘No’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정말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완전히 합법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당들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판사들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재판관들은 공정성을 기본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들은 재판정에 제시된 사실과 증거 기초해 정해진 법률을 적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재판관들은 계속해서 재판에서 법을 적용한다기보다 그들의 개인적인 견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어떤 한쪽이 재판관 후보에게 훨씬 많은 선거 자금을 지원해 줄 때, 재판은 왜곡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재판관들은 보통의 정치인들과 같지 않아야 합니다. 재판관들은 우리를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약속할 수 없고, 약속해서도 안됩니다. 판사들은 공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거 시스템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법관들은 계속해서 모금활동을 위해 전화를 걸고 있을 것입니다.

원문출처:폴리티코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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