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가 뜻을 한데 모아 무엇을 이뤄냈다는 이야기를 듣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러나 지난주, 초당적 노력이 미국 대법원에서 결실을 맺었습니다. 임신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든 일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페기 영이 고용주인 UPS와의 소송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의미가 큽니다. 미국의 임산부차별금지법(Pregnancy Discrimination Act)의 의미를 재해석해 임신한 여성이 차별 관련 소송에서 승소하기 쉽게 되었을 뿐 아니라, 리버럴과 사회적 보수주의자가 연합 전선을 형성하면 여권 신장과 가족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드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가족이라는 주제 안에서 집중하는 이슈는 서로 다르지만 겹치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여성의 일할 기회와 가족의 가치를 모두 훼손하는 고용주 정책이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진보와 보수는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페기 영의 편에 섰고, 결국 법정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의 이유는 명확했죠. 직장에서 차별이 철폐되어야만 여성이 경제적 안정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이 미국을 양성 평등 사회로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페기 영을 지지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지만, 기업이나 고용주의 정책이 여성에게 임신 중절을 강요한다거나 어머니 역할을 할 수 없도록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와 같은 연합 전선의 역사는 꽤 깁니다. 1978년 임산부차별금지법이 발효되던 당시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죠. 당시에도 진보주의자들은 임산부 차별 금지가 일터에서의 양성 평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이 법안을 지지했고, 일부 사회적 보수주의자들도 여성이 임신 때문에 직장을 잃을 수 밖에 없다면 임신 중절이라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같은 편에 섰습니다. 1993년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출산 휴가를, 입양하는 부모에게는 입양 휴가를 주도록 한 가족의료휴가법이 통과되었을 때도 연합 전선은 힘을 발휘했습니다. 임신 중절 반대론자로 명성이 자자한 일리노이 주의 헨리 하이드 의원도 당시 의회 연설에서 가족휴가법이 전통을 중시하는 자신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말하면서, 양성 평등을 외치던 진보 성향 의원들과 손을 맞잡았죠.
페기 영 대 UPS 건에서도 친기업적 성향의 보수주의자들은 기업의 자율성을 명분으로 앞세워 UPS의 편에 섰습니다. 그러나 같은 진영의 많은 이들이 임신 중절 반대 단체들을 중심으로 진보 진영의 여성 단체들과 함께 페기 영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 기묘한 연합 전선은 임산부차별금지법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는 운동을 꾸준히 펼쳐가고 있습니다. 이런 전선은 대법원 내에서도 형성되었습니다. 정치 성향에 따라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리던 다른 이슈들과 달리, 친기업 성향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진 대법관 두 명도 페기 영의 편에 선 것입니다.
양 진영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비용은 꽤 큽니다. 리버럴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임산부차별금지법이나 가족휴가법의 보호 범위에 임신 중절한 여성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까지 출산 휴가를 주자는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에 불만이 있었지만 타협할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 정도의 양보가 없었더라면 미국에서 이런 법안들이 통과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페기 영 사건은 다시금 “가족”이라는 의견이 분분한 사안을 두고도 보수와 진보가 뜻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보편적보육원(universal pre-kindergarten)법 역시 지금은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여성의 임신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쪽으로 홍보가 되면 다시금 보수-진보 연합 전선의 지원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폴리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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