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 절약 시간제(Daylight Saving Time). 영어를 그대로 번역한 이 한자어는 여름에 시계 바늘을 한 시간 앞으로 돌려 해가 떠 있는 밝은 시간을 더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서머 타임(summer time)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1916년 세계 1차대전 중에 독일이 가장 먼저 시행했고, 유럽 여러 나라들과 미국이 뒤따랐죠. 전간기에는 사라졌다가 2차 세계대전 때 다시 등장합니다. 이어 1970년대 오일 쇼크로 에너지값이 치솟자 미국이 다시 일광 절약 시간제를 도입했죠. 미국은 하와이와 알라스카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모든 주에서 지난 8일(일요일) 새벽 2시가 3시로 바뀌며 일광 절약 시간대가 시작됐습니다. 올해 일광 절약은 11월 1일 새벽 2시까지 계속됩니다. 유럽 대부분 나라들이 오는 29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일광 절약을 실시하는 데 비해 4주 더 긴데, 이는 지난 2005년 치솟는 유가 때문에 제정한 에너지 정책법(Energy Policy Act)이 발효된 2007년부터 적용됐습니다.
일광 절약의 개략적인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일광 절약 시간은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된다”는 기본적인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실제 관련 연구들을 모아보면, 이 가정을 뒤집는 결과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이 가정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죠. 사람들이 퇴근한 뒤 밤에 집에서 쓰는 전기를 줄이는 게 가장 큰 목표였는데, 시계 바늘을 일제히 한 시간 앞으로 감으면 사람들이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내게 되니까 더 밝을 때 퇴근해서 집에 가게 되죠. 그럼 전등이든 보일러든 밤에 쓰는 전기 사용량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럼 이제 이 가정을 반박하는 실제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전후해 실시한 호주의 일광 절약 시간제에 관한 연구입니다. 빅토리아 주는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일광 절약 시간제를 계속 실시했고,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는 올림픽이 끝나자 일광 절약 시간제를 해제했습니다. 결과는 명료하게 정리됐습니다. 일광 절약 시간제가 저녁 시간대 전기 사용을 분명 줄여줬습니다. 그런데 절약한 만큼의 에너지가 한 시간 빨라진 아침 시간에 쓰이면서 전체적인 에너지 절약 효과는 사실상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일광 절약 시간제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인디애나 주는 2006년 주 전체가 일괄적으로 일광 절약 시간제를 실시하기 전까지 카운티(우리나라의 시, 군, 구 정도에 해당) 별로 제도를 알아서 선택해서 운영했습니다. 연구진은 2006년 전까지 일광 절약 시간제를 쓰지 않던 카운티의 에너지 사용량이 2006년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일광 절약 시간제가 도입된 이후 에너지 사용량은 1% 늘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역시나 우리의 예상과 다른 결과죠. 2014년 발표된 또 다른 연구는 사람들의 생활 양식 변화에 주목했는데, 일광 절약 시간제가 도입되면 사람들이 평균 15~20분 잠을 덜 자게 되는데, 그 시간 만큼 불을 켜고 난방을 하는 등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일광 절약이 반드시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논란과 관계 없이 일광 절약 시간제는 올해도 예정대로 여러 나라에서 실시됩니다. 에너지 절약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소비 진작,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 유연화 등 일광 절약 시간제가 가져오는 여러 부수적인 효과들을 포함한 실효성에 관한 논의는 올해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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