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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내 방글라데시계와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의 엇갈린 운명

모직 산업의 붕괴 이후, 잉글랜드 북부 브래드포드는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가난한 지역으로 전락했습니다. 이 지역과 비교되곤 하는 지역이 바로 런던 남부의 타워햄릿츠입니다. 그리고 이 두 지역의 비교는 영국 내 이민자 집단 간 비교로 이어집니다. 브래드포드에는 파키스탄 출신의 이민자들이 많고, 타워햄릿츠에는 방글라데시계 이민자들이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두 집단을 정확히 구분해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2011년 인구조사 기준, 영국에는 44만 여 명의 방글라데시계 이민자와 112만 여 명의 파키스탄계 이민자가 살고 있습니다. 실제 이 두 집단은 여러 공통점을 지닙니다. 대규모 이민이 50년대에 시작되었고, 대부분 노동 계급의 무슬림이며, 노동당에 투표하는 경향을 보이고, 단일 업계(방글라데시계는 식당업, 파키스탄계는 택시운전)에 집중적으로 종사하고 있죠. 그러나 이들의 운명이 엇갈리면서, 무엇이 영국 내 이민자들의 성패를 가르는지에 대해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타워햄릿츠의 방글라데시계 이민자 다수는 빈곤층에 속합니다. 역내 한 학교를 예로 들면 학생의 4분의 3이 무상급식을 받고 있고, 모국어는 영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중등교육 자격검정시험(GCSE)에서 70%가 전국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죠. 파키스탄계 학생들도 환경을 고려했을 때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닙니다만, 두 이민자 집단의 학업 성취도는 10년 전부터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청년 취업률이나 진학률, 월 평균 가계 소득도 방글라데시계에서 조금 더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계 이민자가 파키스탄계 이민자들보다 다른 인종과 더 많이 교류하며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두 집단 모두 집단 내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젊은 남성이 같은 나라 출신의 이민자 집단 밖에서 배우자를 찾는 비율은 방글라데시계의 경우 26%지만 파키스탄계는 17%에 불과합니다.

이런 차이의 비밀은 과거에 있습니다. 1960년대, 카슈미르의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건너온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은 대부분 섬유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의 영국행은 70년대에 시작되어, 80년대 초에 피크를 이뤘죠. 그 때가 영국의 전통적인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던 때였지만, 이는 오히려 방글라데시계 이민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처럼 망해가는 산업에 인생을 걸지 않았으니까요. 식당업을 주로 하는 방글라데시계 이민자들은 절반 이상이 런던에 정착했는데, 이것도 두 집단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런던은 경제적으로도 가장 활력이 넘치는 도시이고, 좋은 선생님들이 대부분 런던에서 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도 훨씬 높죠.

도시의 임대 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수 방글라데시계 이민자들과 달리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의 경우 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하지만 자산 가치의 상승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잉글랜드 북부 소도시에서 집을 갖고 있는 것이 마냥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가 주택이 역동적인 지역으로 이사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습니다. 파키스탄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강화되고 있는 문화적 보수주의도 한 몫을 합니다. 사촌 간 혼인이 파키스탄계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배우자를 모국에서 데려오는 경향이 젊은 이민자들 사이에서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1세대 이민자가 여전히 생각보다 많다는 의미이고, 나아가 젊은이들에게 동기 부여가 덜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것은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나타나는 현상이니까요.

오늘날 방글라데시계 이민자들의 경험에서 우리는 이민자들의 성패 여부가 단기간에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 내 가장 형편이 좋지 않은 소말리아계 이민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질겁니다. 이민 과정에서 대부분 런던에 정착하는 운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소말리아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급상승하고 있는만큼, 이들의 미래는 훨씬 밝을 수도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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