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으면서 미국에서는 대선 주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략을 짜고, 선거운동 본부의 인력을 충원하고, 기부금을 확보하는 일 모두 중요하지만 적절한 캠페인 슬로건이 결정적인 한 방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을 겁니다. 슬로건이 선거 운동의 피상적인 면일 뿐이라는 의견도 많지만, 제대로 된 슬로건은 역사에 길이 남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젭 부시와 같은 거물에게도 슬로건은 중요합니다. 지난 대선 때 클린턴이 내세웠던 “진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과 경험”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죠. 그럴바에야 “다시 역사를 만듭시다”로 과거의 영광을 내세우거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유권자의 57%가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해 “나는 여성이다”로 가는게 나을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도 내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1982년 레이건이 사용했던 “그대로 계속 갑시다”를 사용해 공화당을 열받게 하는 것도 재밌는 전략이겠죠.
공화당의 유력 주자 젭 부시는 유래없는 “한 지붕, 세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지만, 성 보다는 이름을 강조하는 쪽이 나을 겁니다. 다수의 공화당원들이 그의 이념적 정체성을 의심하고 있는만큼, 보수성을 최대한 강조하는 슬로건이 좋겠습니다.
이념적 노선이 보다 확실한 주자들은 과감하게 뜨거운 감자를 건드리는 슬로건을 채택할만 합니다. 금융계 거물들을 겨냥해 공격의 화살을 날려온 엘리자베스 워런이라면 “월 스트리트 말고 메인 스트리트”와 같은 슬로건이 어울리죠.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긴 해도, 세 번째 대선에 도전하는 밋 롬니에게는 “포기하지마”를 안겨주고 싶네요.
정치 슬로건에는 저작권이나 상표가 붙지 않으므로, 과거의 성공적인 슬로건을 빌려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미국 대선에서 슬로건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휘그당의 윌리엄 헨리 해리슨 후보는 자신의 별명과 러닝메이트의 성을 붙여 “티피커누, 그리고 타일러(Tippecanoe and Tyler Too)” 라는 슬로건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취임 한 달 만에 사망하면서 “그리고 타일러”에게 임기를 넘겨주었습니다.
1852년에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민주당의 프랭클린 피어스(Pierce) 후보가 자신의 이름과 전임자의 이름(Polk)을 이용한 말장난 슬로건을 선보였습니다. “44년에는 찔렀으니(poke), 52년에는 뚫겠습니다(pierce)”라는 슬로건이었죠.
1864년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치르며 재선에 도전할 때 사용했던 “강 한가운데서 말을 갈아타지 맙시다”는 2차 대전 중에 루즈벨트가 물려 받아 다시 한 번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차 대전 후 후버 대통령은 “모든 냄비에 닭고기를, 모든 차고에 자동차를”이라는, 확실히 와닿는 슬로건을 앞세워 당선되었지만, 대공황이 닥쳐오자 이 슬로건이 부메랑으로 작용하기도 했죠.
4번이나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상대로 선거전을 치러야 했던 상대는 “3선은 안돼”, “4선은 진짜 안돼”와 같은 애처로운 공격형 슬로건을 사용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트루먼 대통령의 유명한 슬로건 “그들에게 지옥을 보여줘, 해리”는 한 지지자가 유세장에서 외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슬로건이 트루먼의 당선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면 대사 자리 하나 쯤은 받아갔어야 할 사람이죠. 반면 트루먼의 상대였던 토머스 듀이는 아무런 슬로건도 없이 조용한 운동을 펼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로부터 “웨딩케이크 위에 있는 남자 모형 같은 사람”이라는 폭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1952년 아이젠하워는 별명인 아이크(Ike)와 각운을 활용해 “나는 아이크를 좋아해(I like Ike)”라는 홍보 노래와 애니매이션 홍보 영상을 선보였습니다. 나이든 분들은 아직도 코끼리가 등장하는 이 애니매이션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놀랍게도 유명인사 케네디 대통령에게는 잘 알려진 대선용 슬로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프랭크 시나트라라는 수퍼스타가 자신의 노래를 선거 운동용으로 개사해 케네디 대통령에게 선물했습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홍보 전략이었죠.
린든 존슨 대통령의 슬로건 “린든 존슨과 함께 끝까지”는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참혹한 역사와 함께, 엄청나게 아이러닉한 슬로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가 옳다(right)는 걸 알고 계시죠”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극우(right)에 가까운 그의 부적절한 이미지를 강화한 실패작이었습니다.
1974년 닉슨이 남긴 엄청난 난장판을 치워야했던 같은 당의 제랄드 포드 후보는 닉슨을 겨냥해 “그가 우리에게 자부심을 되돌려 줄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지만, “변화”를 주제로 “이번엔 리더다운 사람을 뽑아보자”고 외친 지미 카터에게 패하고 맙니다.
슬로건은 아니지만 “4년 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지셨습니까?” 역시 미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한 마디 입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이 한 마디로 10%p 차 대승을 이끌어냈고, 첫 임기 내 호황이 이어지자 “미국, 다시 아침입니다”라는 기분좋은 슬로건으로 재선에 성공합니다.
민주당의 슬로건이 다시금 주목을 받은 것은 1992년입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슬로건은 40대의 젊은 클린턴을 백악관으로 보낸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반면 두 번째 도전 당시의 “21세기로 가는 다리”는 애매한 의미로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습니다.
2000년과 2004년 대선은 눈에 띄는 슬로건이 없는 조용한 선거였지만, 2008년 오바마의 등장은 정치 슬로건계의 부진을 한 방에 날려버렸습니다. 오바마의 참모들은 “변화”라는 핵심어를 활용해 무서운 기세로 좋은 슬로건들을 뽑아냈고 “조국”을 앞세웠던 맥케인과 롬니를 가볍게 눌러버렸습니다.
2016년, 대선 후보들은 어떤 슬로건을 내걸게 될까요? 가장 짧은 말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정치 슬로건이 다시 화제에 오를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폴리티코)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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