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들의 권리가 상당히 제약받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이슬람 교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엄격한 수니파 근본주의 교리인 와하비즘의 원칙에 따라 여성은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 주체라기보다는 남성과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일례로 특정한 의학 수술을 받으려면 아버지나 남편 등 남성의 허락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우디를 통치하던 고(故)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사망 소식에 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뜻밖의 발언을 했습니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국왕은 굉장히 신중하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여성 권익의 수호자였다”고 말한 겁니다. 지난해 고 압둘라 국왕의 딸이 왕실의 공주들은 사실상 10년 가까이 가택연금 상태나 다름없는 삶을 보냈다고 말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발언입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사실에 더욱 부합한지 몇 가지 구할 수 있는 통계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여기서 미리 언급하고 싶은 건 양성평등 내지 여성의 권리와 관련한 데이터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예 데이터가 없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분야가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18세 이전에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또는 강제로 결혼하는 여성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전형적인 인권 침해로 여겨지는 여성 할례(female genital mutilation)가 얼마나 성행하는지, 남편에 의한 가정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같은 항목은 공식적으로 집계한 데이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 연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남성의 53%가 필요한 경우 가정에서 아내에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고, 32%는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있지만, 전체 국민이 그러는지 섣불리 확대하기에는 어려운 자료였습니다. 그래서 여성 노동, 교육, 정치 활동을 비롯해 공공 영역에서 집계가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권(女權)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그 전에 전체 인구 가운데 여성 비율을 먼저 살펴봤습니다. 놀랍게도 사우디아라비아 전체 국민 가운데 여성은 42.5%밖에 되지 않습니다. 남녀의 자연성비를 고려했을 때 상당히 기형적인 수치라 할 수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여성 인구의 비율이 낮은 5개 나라 모두 중동의 나라들(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 오만, 바레인, 쿠웨이트)이었습니다. 반대로 여성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는 나라들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성비가 1:1을 벗어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서인도제도에 있는 네덜란드령 큐라사오(Curaçao) 섬이 여성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인데 54.7%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남자가 많은 이유는 아마도 이민 정책 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1/3에 육박하는데, 이 가운데 대부분이 남성입니다.
적어도 진학률에 있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이 남성에 비해 크게 차별을 받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25세 이상 여성 가운데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이들이 60.5%, 남성은 70.3%였습니다. 약 10%포인트 차이는 전 세계 평균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의 비율은 크게 낮은데, 15세 이상 여성 가운데 직업을 갖고 있는 여성은 18.2%에 불과했습니다. 남성의 75.5%가 일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입니다. UN 통계자료에 포함된 국가들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여성 노동이 활발하지 않은 나라는 7개밖에 없습니다. 정치 활동도 활발하지 않은 편인데, 그나마 의원들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에 육박해 189개 나라 가운데 여성의 정치 진출지수 72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의회가 갖고 있는 권한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의회는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를 청원할 권한만 갖고 있을 뿐 법을 제정하는 권한은 국왕에게만 달려있습니다.
여성의 법적 권한에 따르는 제약도 놓치지 말아야 하지만, 이는 수치화하기 쉽지 않은 사안들입니다. 주거지를 선택할 자유가 없고, 홀로 여권을 신청하거나 자녀에게 시민권을 줄 권리도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만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의 권익이 보호받고 실현되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새 국왕과 왕실이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은 많아 보입니다. (FiveThirty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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