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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사설이 미국-쿠바 관계 회복에 한 몫했다?

지난 11월2일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쿠바가 서로 수감자를 교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설을 썼습니다. 2009년이래 쿠바에 억류중인 미국 정부 하청업자 앨런 그로스를 석방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가 수감하고 있는 쿠바 간첩 3명을 풀어주자는 겁니다.

사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만약 앨런 그로스가 쿠바 형무소에서 사망한다면, 쿠바와 건강한 관계를 세우려는 전망은 다시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정말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예언이라도 한 걸까요. 어제(12월17일)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시작하겠다면서 외교 관계를 재개하고 무역 및 금융 거래 제재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 내용 중에는 수감자 교환을 암시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뉴욕타임스 사설과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이 쿠바 간첩 3명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쿠바는 미국에게 정보 자산(intelligence asset)을 준다고 했습니다. 쿠바에서 통신 장비를 밀수하려 했다는 죄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앨런 그로스의 이름은 발표문에는 없었고, 정보자산이 뭘 말하는 지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쿠바 정부는 인도적인 이유(humanitarian grounds)에서 그를 석방했습니다.

세부 사항에서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최근 일련의 뉴욕타임스 사설은 흐름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앨런 그로스 관련 사설은 그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지난 10월 11일 사설은 대 쿠바 무역 제재 해제를 주문했습니다. 10월 19일에는 에볼라 사태를 대처하기 위해 두 나라가 서로 협조해야 하는데 외교 문제가 장애라며 한탄했습니다. 또 라울 카스트로 정권을 약화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시도나, 쿠바에서 의료 인재를 빼내오려는 정책을 꾸짖었습니다. 사설은 대 쿠바 관계 정치학을 분석하는 가 하면, 쿠바 경제를 (냉혹하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쿠바 관계 정상화 선언을 치하하는 사설을 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시기 적절한 사설을 쏟아냈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시기적절했습니다. 혹시 뉴욕타임스가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모종의 정보를 얻었던 건 아닐까요? “그런 의심을 여러차례 받았습니다”라고 뉴욕타임스 논설위원 에르네스토 론도뇨는 답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여론을 미리 떠보기 위해 뉴욕타임스 사설을 이용했다는 식의 얘기가 나돌고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론도뇨는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이 정부 관료나 정책입안자들과 종종 대화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런 인터뷰는 공개적으로 진행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정부와 결탁하거나 어떤 글을 쓸 지 미리 조정하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폴리티코>지는 미국 정부가 쿠바와 “18개월 동안 비밀리에 외교 협상”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론도뇨 논설위원은 뉴욕타임스가 쿠바 협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번 가을부터였다고 밝혔습니다. 내년 4월에 아메리카 대륙 정상 회담이 열리는 데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쿠바의 참석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쿠바는 오랫동안 미국의 반대로 불참해왔기 때문에 이는 어떤 충돌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논설위원들은 이런 상황과 맥락 때문에 쿠바 문제에 관해 오바마 행정부가 뭔가를 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라고 론도뇨는 설명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사설이 미국-쿠바 외교관계 정상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한가지 역할은 인정해야 겠습니다. 쿠바의 최고 블로거라고 할 수 있는 피델 카스트로가 이 사설을 요약 정리했다는 겁니다. 전 쿠바 최고지도자 카스트로는 쿠바 국영 신문사 <그란마>에 기고한 칼럼에서 뉴욕타임스 사설을 광범위하게 인용했습니다. “쿠바 국영신문이 우리 사설을 문자그대로 다 옮겨싣는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론도뇨의 말입니다. 그게 일어났습니다. <그란마>에 실린 칼럼은 뉴욕타임스 사설 전문을 번역해 옮겼습니다. 인권침해와 시민자유를 침해했던 피델 카스트로가 이제는 저작권까지 침해한겁니다.

<그란마>는 스페인어로 번역을 하면서 원문을 손상시킬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과거에 쿠바 언론이 미국 신문을 번역할 때는 껄끄러운 부분은 삭제하겨나 편집해버리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라고 론도뇨는 설명했습니다.

최근 쿠바를 방문한 론도뇨는 쿠바 사람들이 인터넷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를 목격했습니다. 최신 비디오와 뉴스를 모아놓은 하드디스크를 집으로 배달받은 뒤, 저장된 내용물을 PC에 옮겨서 본다는 것입니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하드디스크 배달물은 쿠바 문제를 언급한 뉴욕타임스 사설이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우리가 쿠바의 정보 장벽을 허무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놀랍고 기뻤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원문출처: 워싱턴포스트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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