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칼럼

부유한 이들은 죄를 뉘우칠 때에도 더 큰 이득을 봅니다

범죄자가 잘못을 뉘우치는지는 재판 형량 선고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역사적으로 회개는 형사 절차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18세기에 도입된 근대 교도소는 범죄자의 회개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형사 재판에서 범죄자의 탄원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고가 잘못을 반성하는지 여부가 형량 결정에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됩니다. 그러므로 법 집행자가 범죄자의 속내를 한눈에 꿰뚫어보고 적절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는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보통 판사는 범죄자가 반성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주관적인 느낌에 의존합니다. 심지어 설득력이 부족한 판결에서조차 판사들은 범죄자가 정말로 뉘우쳤다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공개하지 않습니다. 미 연방 정부는 피고가 자기 책임을 인정할 경우 감형할 수 있다는 기준을 세웠으나, 실제 현장에서 그 기준은 임의로 쓰이고 있습니다. 마치 판사와 배심원이 피고의 눈빛을 들여다보고 죄를 가늠해 알맞은 처벌을 내릴 수 있다는 듯 말입니다.

이같은 상황은 여러 문제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 저지른 죄에 상관없이 부유한 범죄자가 사죄하는 모습은 가난한 범죄자의 그것보다 더 믿음직하게 여겨집니다. 범죄자가 부자일 경우 경찰은 경고하는 선에서 끝내는 경우가 잦습니다. 가석방 심사 위원회는 부유한 수감자에게 더 관대합니다. 반면 가난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범죄자들이 사죄하는 모습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연구에 따르면, 판사들은 인종적 소수자가 보여주는 사과를 덜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옷차림, 말하는 방식, 몸가짐 등 사회적 계층을 드러내는 요소는 범죄자의 행실을 판단할 때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인종적 약자가 진정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믿음을 주려면, 겉모습이나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편견을 먼저 극복해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범죄자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조절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판사들이 일부러 약자들을 차별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 연구는 기업 대변인의 얼굴 인상에 따라 위기상황에 처한 기업을 보는 대중의 판단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기 얼굴’을 한 대변인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위기 상황에서, ‘성숙한 얼굴’을 한 대변인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얼굴 인상이 그러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판사들은 무의식중에 자신들과 비슷한 생김새나 몸가짐을 지닌 고위직 범죄자에게 더 관대할지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사죄하는 모습을 바탕으로 내린 판단을 판결에 반영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차별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법정은 돈의 힘이 직접 발휘되는 곳입니다. 더 비싼 변호인이 대체로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과하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컨설턴트들이 있으며 이들은 피고인에게 어떻게 참회하는 것이 판사에게 더 효과적일지를 알려줍니다.

잘 훈련된 사죄는 판사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효과가 있습니다. 2000년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도나 베일리는 운전 중 사고를 당해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타고 있던 포드 자동차의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베일리는 포드사에 1억 달러의 소송을 걸었으며 사과 역시 요구했습니다. 세 명의 변호사가 베일리의 병실을 방문해 공식적인 사과를 했고, 그 당일 베일리는 확인되지 않은 액수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사죄가 진심이었다고 느꼈어요.” 공식적 사죄 덕분에 포드사는 소송이 가져올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돈의 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부유한 범죄자는 가장 비싼 갱생 프로그램에 들어가며, 피해자에게 큰 보상을 함으로써 법적인 처벌을 피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보석을 신청할 수 없고,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지 못해 감옥에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만일 앞으로도 사죄하는 범죄자들의 형량을 계속 감형한다면, 뉘우치는 행위를 판단할 때는 더욱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할 것입니다. 범죄자의 반성이 어떻게 판결에 영향을 주었는지, 기준이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적용되었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판사들이 그러한 기준에 맞추어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감시의 끈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원문출처: Aeon

번역: Hortensia

Hortensia

Recent Posts

[뉴페@스프] “응원하는 야구팀보다 강한” 지지정당 대물림… 근데 ‘대전환’ 올 수 있다고?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2 일 ago

[뉴페@스프] ‘이건 내 목소리?’ 나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였는데… 역설적으로 따라온 부작용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4 일 ago

살해범 옹호가 “정의 구현”? ‘피 묻은 돈’을 진정 해결하려면…

우리나라 뉴스가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사이 미국에서…

5 일 ago

미국도 네 번뿐이었는데 우리는? 잦은 탄핵이 좋은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투표가 오늘 진행됩니다. 첫 번째 투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으로 투표에…

1 주 ago

“부정 선거” 우기던 트럼프가 계엄령이라는 카드는 내쳤던 이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2 주 ago

트럼프, 대놓고 겨냥하는데… “오히려 기회, 중국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중”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안보…

3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