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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ISIL에 정당성을 주는가

 (이 글을 쓴 수마야 간누쉬는 영국계 튀니지 작가로 중동 정치 전문가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이슬람국가(IS)로 불리는 단체를 지칭하면서 ISIS라는 용어를 써왔지만, 원저자의 표기에 따라 ISIL로 표기합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오스만튀르크의 패배로 끝난 뒤, 영국과 프랑스는 옛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토 분할 문제를 위해 비밀 협정을 맺었습니다. 1916년 맺어진 이 협정은 양국 외교관 이름을 따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라고 부릅니다. 이 협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라크 등 현대 아랍 국가의 국경선이 그어졌습니다.

지난 백 년 간 이 국경선을 바꾸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범아랍 민족주의의 전성기 때조차 그랬습니다. 1990년 사담 후세인은 잘못된 꿈을 꾸며 쿠웨이트를 침공했습니다만 재앙으로 끝났습니다. 후세인은 권력은 몰론 자신의 목숨까지 잃어야 했습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역설적으로, 이름없는 작은 조직이었던 ISIL이 후세인이 못한 것을 이뤄냈습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친 넖은 땅의 지배권을 선언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없애버렸습니다. 사이크스-피코 체제에 처음으로 성공적인 도전을 일으킨 것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잘못된 이념에 빠진 극단주의 조직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꼭 종교적 이유뿐만이 아니라 과대망상에 의한 것이거나 순수하게 범죄를 위한 이유로 모인 집단도 있었지요. ISIL은 이런 관점에서 독특한 사례도 아니고 전례 없는 사례도 아닙니다. ISIL은 다른 극단주의 세력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비현실적인 목표나 잔인한 살해방법에 있는 게 아니라, 이 조직이 부상하게 된 갑작스러움과 영토를 확장한 그 속도에 있습니다. 겨우 몇 달 밖에 안되는 시간 동안 변방의 한 분파에 불과했던 ISIL은 국제 정치의 중심 무대에 올라 지정학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란,카타르부터 미국과 걸프만 연안 왕국들에 이르기까지 서로 적국인 나라들마저 ISIL 추방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게 했습니다.

ISIL 종교적 기원과 이단성을 밝히고 ISIL의 잔인한 전술을 어떻게 종교가 정당화하는지 밝히는 것 등은, ISIL이 왜 빠르게 성장했는지, 어떻게 예기치못한 지배적 위치를 얻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탐구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진짜 대답은 아랍의 지정학적 변화에 있습니다. ISIL이나 그와 비슷한 폭력 조직이 확산할 여지와 탄력을 준 것은 바로 중동에서(정확히는 아랍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후퇴하면서 생겨난 전략적 정치적 진공상태였습니다.

미국은 더이상 세계 곳곳 민감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변화를 관찰하고 조율할 능력이 없습니다. 미국 군사력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엄청난 화력을 가진 미국은, 특정 국가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체제를 해체하는 일은 능히 할 수 있지만 씁쓸하게도 새로 뭔가를 건설하는 일엔 무능력했습니다. 전쟁 이후 폐허 위의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미국은 한편으론 극단주의 조직의 성장을, 다른 한편으론 민족과 종파마다 내부적 갈등을 조장하는 토양을 마련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힘이 감퇴하면서 지정학적 진공사태가 출현했고 이는 시리아 혁명 때 더욱 노출됐습니다. 미국과 걸프만 연안 동맹국은 시리아 사태를 자기 뜻대로 종결지을 힘이 없다는 걸 증명했고, 이란과 러시아와 함께 영향력과 통제력을 두고 경쟁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초래된 정치적 진공상태를 찾아 이라크의 극단주의 지하드 조직이 재빠르게 이동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랍 사회 인구 구성이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과거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 지배자는 종교,종파,민족,부족 등 다양한 사회적 집단 사이의 긴장관계를 다스리기 위해 정체성을 희석시키고, 억제, 억압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이 역할은 나중에 제국주의 국가가 물러난 이후, 아랍 지역에 인위적으로 건설된 독립 국가들(포스트 식민주의 국가)에 의해 그대로 수행됐습니다. 이들 신생국들은 연약하고 피상적으로 남아있는 집단적 국가 정체성이라는 깃발 아래 가짜 현대화를 중첩하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예멘과 같은 포스트 식민주의 국가에서 허약한 정치 구조가 무너지자, 전통적인 아랍 민족 정체성과 유대감이 다시 재천명되고 있습니다. 훨씬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말이지요.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 아랍,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등이 분별없이 자해에 가까운 오싹한 광경을 보이며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런 편집증적인 적대감과 사회 혼란, 정치 갈등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그 이념적 열정과 청교도적 욕망과 함께 잠재적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정치적 불만이 민족적 종파적 원한과 뒤섞여 알카에다,ISIL,기타 지하디스트 조직의 증오가 들끓는 거대 담론을 생산했습니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비극은 하향식 현대화, 인위적으로 그어진 포스트 식민주의의 국경선과 정치 체제의 실패에 대한 값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평화적 수단과 민중 시위를 통해 변화가 가능할 거라던,  ‘아랍의 봄’에 걸었던 희망이 사라져버린 지금, 극단주의와 폭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 기형적이고 병적인 혼란의 자식들은 예전보다 더 흉측하고 치명적이며 앙심을 품은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적 정치 변화를 막는 걸프만 왕국과 독재 아랍 정권과의 오랜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미국과 유럽 동맹국은 최근 일어난 쿠데타를 뒤에서 지휘하고 그 쿠데타의 정당성을 옹호하면서, 아랍인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투표 상자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선거는 변화의 수단으로 의미가 없다. 선거 결과는 얼마든지 뒤집어지고 짓밟힐 수 있다. 폭력과 복수만이 암울한 너희 존재의 탈출구다.” ISIL과 지하드 조직의 주장에 이보다 더 강력한 신빙성과 정당성을 주는 것은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아랍 지역은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반영하는 거울이었습니다. 이런 전략적 위치 때문에 권력 교체는 항상 인명 피해와 정치 사회적 불안이라는 비싼 값을 치뤄야만 했습니다. 오스만 튀르크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영국,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이 그렇습니다. 근본적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혼돈과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기사 출처: 알자지라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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