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TV 수사물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법정에서는 이 원칙을 거스르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2007년 자동차를 몰고 가다 다른 차를 들이 받아 사망자와 부상자를 낸 리처드 톰은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경찰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수갑을 차지는 않았지만 경찰차 뒷자석에 붙잡혀 있었고, 그러는 동안 경찰에게 피해자들의 상황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죠. 하지만 후에 법정에서 톰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담당 검사는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데서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자신의 무분별한 행위가 낳은 결과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수사물에서 매일같이 들었던 대로라면, 톰에게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을텐데요? 그러나 이른바 ‘미란다 원칙’의 실제 적용은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체포 순간에 미란다 원칙을 말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심문하기 전까지만 말해주면 된다는 것이 법원의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체포와 심문 사이에 상당한 간격에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톰의 경우에는 구속된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미란다 원칙을 들었는데, 이후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그가 침묵을 지킨 사실이 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대로라면 용의자 입장에서는 말을 해도 불리하고, 침묵을 지켜도 불리한, 이길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게 톰 측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201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다시 한 번 비슷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 용의자가 자발적으로 두 시간 동안 경찰의 질문에 답을 했지만 자신의 집에서 나온 권총에 대해서만은 자세하게 말하기를 거부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진술을 거부한 사실이 법정에서 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판결이었죠.
스탠포드 법대의 제프 피셔 교수는 이런 판결이 일종의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묵비권이 헌법에 명시된 권리이니 그냥 행사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법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려면 용의자 스스로 자신이 수정헌법 5조에 명시된 권리를 행사하고 있음을 경찰에게 밝혀야 한다는게 미국 법원의 판단입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실제로 “침묵을 지킬 권리”라는 것이 애초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흔히 사용되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right to remain silent)”라는 표현과, 미란다 원칙을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는 1966년의 대법원 판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지만, 헌법에 명시된 것은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이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권리”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 두 가지 권리에 중첩되는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정확히 같은 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NPR)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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