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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칼럼: 눈에 보이지 않는 부자들

반세기 전에 <더 뉴요커>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이라는 유명한 칼럼을 통해 미국 사회가 풍요로 넘쳐나고 있으며 빈곤층은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는 잘못된 통념을 반박했습니다. 이윽고 빈곤의 실체를 폭로하는 글이 이어졌고, 이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빈곤과의 전쟁’ 정책에 영향을 줬습니다.

오늘날 더이상 빈곤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빈곤층이 실제 가난하지 않다는 주장도 듣게 됩니다. “이봐, 저 사람들도 Xbox를 갖고 있다구!”라는 식으로 말이죠. 실은 오늘날 진짜 눈에 보이지 않는 쪽은 부자들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놀라는 분이 계실 겁니다. TV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보면 절반 이상은 숨 막힐 듯 화려한 부자의 일상을 다루고 있잖아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유명인의 일면일 뿐입니다. TV쇼를 통해 대중이 부자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있는지 정확한 감을 갖게 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실 미국인 대부분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하게 변했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 시민들에게 주요 대기업 임원의 연봉이 일반 노동자보다 얼마나 높은지를 물어보는 설문 조사를 한 적 있었습니다. 미국 응답자는 대체로 대기업 임원이 그 회사 노동자보다 30배 정도 더 많이 벌 거라 추정했습니다. 이런 추측은 1960년대에는 대략 실제 현실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그 격차는 급증해서 오늘날 고위 임원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그 회사 평균 노동자의 300배 정도가 됩니다.

미국인은 우리 세상의 지배자들이 얼마나 벌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으며, 부의 집중도를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이게 일반 대중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의미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른바 잘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조차도 현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몇 해 전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운동이 벌어졌을 때 ‘1% 부자’라는 구호가 널리 퍼졌습니다. 경제 전문가라는 분들도 흔히 상위 5%대 하위 80%라는 비교법을 자주 씁니다.

하지만 1%라는 범위는 너무 넓습니다. 실제 우리 사회 자산의 상당 부분은 더 좁은 범위의 부유층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75년 미국 상위 1% 부자가 미국 전체 자산 총합의 25%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그 비중이 40%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 늘어난  자산의 대부분은 상위 0.1%에게 돌아갔습니다.

왜 대중은 이런 통계를 실감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마도 진짜 부자들이 일반 대중의 삶과 너무 멀어져 있어서 보통 사람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연예인들은 예외입니다. 영화배우나 스포츠 스타의 화려한 부에 대해서 우리는 익히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부유함은 진짜 상류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가장 수입이 높은 영화배우라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1년에 7천5백만 달러를 벌었다고 하는데, 지난 2013년 헤지 펀드 매니저 상위 25명이 1년 평균 수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부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가 될까요? 예. 정치적인 면에서 문제가 됩니다. 전문가들은 미국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부의 불평등에 관해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이 현상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은 대중이 부의 불평등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의 불평등을 옹호하는 쪽에선 이런 무지를 적극 활용합니다. <헤리티지 재단>은 상위 10%의 부자들이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다며, 그들이 전체 소득세의 68%를 부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런 수사는 ‘소득세’만 강조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세금 문제를 희석합니다. 이 10%의 부자들이 전체 국민 소득의 절반과 전체 국민 자산의 75%를 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세금이 정말 무거운 것인지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인은 흔히 부의 불평등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뭔가가 변해야 한다, 최저 임금을 올려야 한다,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답합니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불평등 문제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대중이 진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또 모르지요. 오늘날 정치적 균형은 대중의 무지, 즉 우리 사회가 진짜 어떤 모습인지를 모른다는 점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까요.

출처: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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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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