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William Catellanos 홈페이지 / 가디언
벌써 20년이 지난 일입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던 카스테야노스(William Castellanos) 씨의 눈 앞에 열심히 뗏목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 건 말입니다. 미국의 봉쇄와 경제 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소련이 붕괴하자 1990년대 쿠바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사람들은 암시장에서도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쿠바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도 좋다고 말했고, 3만 5천여 명의 쿠바인들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바다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겐 마땅한 목적지도 없었거니와, 바다를 건널 배편도 마땅치 않았죠. 이들은 나무를 이어붙여 뗏목을 만들고 방수포와 튜브를 이용해 조잡하기 짝이 없는 보트를 만들어 바다로 나섰습니다. 목숨을 건 항해를 떠나는 보트 피플(boat people)이었습니다.
카스테야노스 씨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흑백필름 두 통과 카메라를 들고 다시 바닷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았죠. 뗏목과 튜브를 이어붙인 보트는 플로리다 해협의 거센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였습니다. 그리고 카스테야노스 씨는 사진 속 소녀와 눈이 마주칩니다. 곧 망망대해로 몸을 싣게 될 운명인 걸 알고 있던 걸까요? 소녀의 눈은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듯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몇 달이 지나서야 어렵사리 인화지를 구해 필름을 인화할 수 있었던 카스테야노스 씨는 사진 속에서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한 소녀의 눈동자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카스테야노스 씨도 쿠바를 떠나 지금은 아르헨티나와 미국에서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저 사진들을 공개하기를 꺼려왔지만, 사진 속에 담긴 이들의 생사와 운명을 확인하기 위해 이를 공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어쩌면 젊은 시절 자신이 기록으로 남긴 사진이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카스테야노스 씨는 말했습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인터넷에 전시하고 사진 속 주인공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함께 담았습니다. 그 결과 꽤 많은 사람들이 생사를 알려왔습니다. 누군가는 스페인에, 멕시코에, 미국에, 그리고 쿠바에 남아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카스테야노스 씨는 아직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저 사진 속 소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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