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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시아에선 사진 찍을 때 V를 그릴까요?

[역자주: 미국 주간지 <타임> 8월4일자 기사입니다]

아시아에선 사진 찍을 때 손으로 브이(V)자를 만드는 걸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중지와 검지를 펴고, 손바닥을 앞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마치 영어권에서 ‘치-즈’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습관입니다. 근데 왜 이러는 걸까요? 이 손짓은 아시아 안에서도 특히 동아시아 대중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 마치 오래전부터 있었던 전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은 1960년대 이전 이런 손짓이 유행했다는 증거가 없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주 널리 퍼진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V-사인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설 가운데 미국 피겨 스케이트 선수 자넷 린이 원조라는 설이 있습니다.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미국 대표였던 자넷 린은 유력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18세 소녀의 꿈은 연기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무너졌고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 금발 소녀는 인상을 쓰는 대신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린의 미소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인의 상식을 매력적으로 뒤집었고, 그리하여 일본 팬의 사랑을 받게 됐습니다.

린은 <타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인은 내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온종일 군중이 날 둘러쌌다. 마치 록스타가 된 것처럼 팬은 선물을 해줬고 악수를 하려고 했다.” 린은 일본에서 미디어 열풍을 일으켰고, 팬레터 수천 통을 받았습니다. 올림픽 이후 일본 전국 미디어 투어를 다니는 동안, 그녀는 습관적으로 V-사인을 그려 보였습니다. 문화 현상이 탄생한 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열풍은 기존 문화와 결합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V-사인은 이미 만화를 통해 승리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1968년 야구 만화 <거인의 별>에서 아버지와의 갈등과 시합의 압박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큰 시합을 앞두고 아버지로부터 “V-사인”을 받아 암묵적 지지를 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만화가 나온 직후 제작된 배구 만화 <사인은 브이!>는 TV 연속극으로 방송되었는데, 중독성 있는 그 주제곡은  “V-I-C-T-O-R-Y!”라는 구호를 담고있었습니다.

하지만 V-사인이 결정적으로 하나의 문화가 된 계기는 아마도 광고인 듯 합니다. 물론 자넷 린이 V-사인 유행에 일조한 건 사실이지만, <더 스파이더즈> 라는 인기 밴드 가수였던 이노우에 쥰의 역할을 빼놓을 순 없습니다. 이노우에는 코니카 카메라를 홍보했는데, 광고를 촬영하는 동안 즉흥적으로 V-사인을 내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사인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로 일본에선 이노우에 쥰 이론을 가장 자주 언급한다”고 도쿄대 교수이자 일본 미디어 문화 전문가 제이슨 칼린은 말했습니다. “새로운 취향과 관습을 대중에 전파했다는 점에서, V-사인 현상은 전후 일본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 사례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카메라가 대량 생산되고 여성잡지/소녀잡지가 급속히 범람하면서, “카와이(かわいい)의 미학, 즉, 외면적 귀여움을 바탕으로 한 사진/영상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V-사인은 오늘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한창 유행중인 ‘오리 표정 짓기’와 비슷했습니다.칼린 교수는 “V-사인은 얼굴을 더 작고 귀엽게 보이는 기술로 알려졌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미주리대(UMSL) 인류학 및 일본학 교수인 로라 밀러는 이 유행을 여성이 퍼뜨렸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로라 교수는 1970년대 초반 일본 소녀들이 V-사인을 그리며 “피이스”(peace)라고 말하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로라 교수는 <타임>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유행 창조자는 흔히 젊은 여성이었지만, 이들은 문화 혁신자로서 역할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1980년대들어 일본 대중 문화가 동아시아로 퍼져 나가자(당시는 아직 한류 문화가 태동하기 전이었습니다), 이 V-사인은 중국 본토, 홍콩, 타이완, 한국에 퍼졌습니다. 지금은 이 관습을 아시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V-사인을 짓는 사람은 그 기원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나, 왜 V-사인을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합니다. 어떤 사람은 유명스타를 흉내 낸 거라 하고, 어떤 이는 사진 찍힐 때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버릇이라고 합니다. 부산에 사는 한 학생은 “(사진 찍을 때) 손으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습니다. 홍콩에 사는 4살 난 아이는 “왜 그런진 몰라요. 그냥 재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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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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