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이 글은 영국 교회 런던 교구의 신부이자 신학 박사인 자일스 프레이저(Giles Fraser)가 가디언에 쓴 칼럼입니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생지옥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참상을 보고도 이를 외면하고 있는 언론과 우리 모두를 향해 거친 표현을 숨기지 않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영국 민영방송 채널4(Channel 4)의 메인뉴스 간판앵커인 존 스노우(Jon Snow)는 얼마 전 시청자들 앞에서 가자지구 취재기를 밝혔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존의 뉴스와는 내용도 달랐거니와 존 스노우의 어조와 표정이 특히 달랐습니다. 스노우는 가자지구의 한 병원에서 만난 열 살 난 팔레스타인 소녀를 언급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폭탄 파편이 척추에 파고 들어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던 아이의 모습을 묘사하는 스노우의 얼굴에는 슬픔과 분노가 서려 있었습니다. 이런 생지옥이 계속되는 걸 막기 위해 시청자와 우리 모두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건 생생한 뉴스일까요? 아니면 불편부당해야 하는 중립과 객관성을 제일 가치로 삼아야 하는 언론인의 본분을 망각한 선동이었을까요?
사례 하나 더. 얼마 전 유엔 대변인 크리스 군네스(Chris Gunness)는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숨진 유엔 학교와 관련해 알자지라와 인터뷰를 하던 중 슬픔을 못이기고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군네스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으니 잘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아직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운 유엔 학교 관계자를 카메라 앞에 앉힌 알자지라 보도국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요?
저는 언론인으로서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최대한 건조하고 공평하게, 객관적인 시선에서 전달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이려 해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학살을 떠올릴 때마다 한없이 두렵고 무기력해지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절규와 슬픔을 담아내지 않고 정치적인 정당성을 논하는 것 또한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도 직접 느꼈습니다. 지난주 칼럼에서 저는 “정당한 전쟁이 있다면, 정당한 테러리즘 또한 있을 수 있다”고 썼죠. 하지만 아무런 방비도 없이 스러져간 어린이들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가족과 군네스 등 관계자들을 보고 언론이 객관이란 이름으로 탁상공론을 양산하는 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절감했습니다.
언론이, 기사를 쓰는 기자가 주관을 철저히 배제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건 잘 알려진 철칙입니다. 기자라면 초년 시절 누구나 뉴스(news)와 의견(comment)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죠. 하지만 사람이 정말 철저하게 객관적일 수 있나요? 가자지구의 참상을 전달할 때 두 살 난 아이의 주검을 비닐봉지에 간신히 수습해 오열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완전히 외면한 채 팩트만을 전달하는 게 그래도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걸까요? 죽음의 그림자에 짓눌려 사는 이들의 절망과 분노를 담아내는 것 또한 언론의 책무가 아닐까요?
지금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일 앞에서는 “이성은 감성의 노예(Reason is a slave to the passions)”라고 일갈한 흄(David Hume)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차라리 저는 어느 일간지가 1면 머릿기사로 “이런 의미없는 학살, 미치광이 짓을 당장 그만둬라. 정말이지 역겹다(We hate this fucking stupid pointless war)”와 같은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써놓는다면 감정을 충실히 전달한 그 언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겁니다. 감정을 앞세워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가자지구 사태 만큼은 객관과 중립이라는 허울 뿐인 가치 아래 쏟아지는 보도들이 사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과 다름 없는 완벽한 가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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