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쿼츠(Quartz)>는 세계에서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도시가 서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을 경험해 본 사람이면 세계 커피 산업에서 서울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잘 압니다. 아, 스타벅스 본사는 빼고 말이죠. 이 굴지의 커피 회사가 1999년 이화여대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만 해도 한국 시장을 진지하게 생각지 못했다는 게 스타벅스 대변인 제이미 라일리의 말입니다. 지금 스타벅스는 서울에만 매장이 약 300개에 달합니다.
라일리는 성공 요인으로 지역 파트너인 신세계백화점이 마케팅과 상품개발 등을 도와준 점을 꼽았지만, 사실 신세계백화점이 대단한 일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스타벅스가 진입했을 때 한국은 커피 산업이 막 번창하려고 했던 때여서 쉽게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커피에 완전히 미쳤어요.” 커피 산업 전문가이자 <커피메이커즈>라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앤드루 헤첼 씨의 말입니다. 경제가 성장하자 한국인은 라떼 같은 데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커피 한잔에 빵 한 조각이면 10달러(1만 원)에 달해서 커피를 마시는 건 다소 사치스런 소비 행태가 됐습니다.
성균관대 다니엘 스베켄디크 교수는 “스타벅스 커피를 한 손에 쥐고 걷는 건 마치 명품 핸드백을 차고 다니는 것처럼 일종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 됐다”고 분석합니다. 물론 비싼 가격은 수익에도 도움이 됩니다.
스베켄디크 교수는 커피가 한국에 알려진 것이 19세기 말, 인기를 끈 건 일본 강점기부터였다고 설명합니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들여온 커피믹스가 특히 유행해서 이후 수십 년간 원두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미국에선 아침마다 원두커피를 마시는 게 일반적이지만, 지금도 한국에선 차나 커피믹스가 더 선호됩니다. 커피숍은 커피 마시러 간다기보다 시간 보내러 가는 곳입니다. 학생 네다섯 명이 프라푸치노 한 잔만 시켜놓고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서울관광마케팅 주식회사의 모린 오크롤리 실장은 한국에서는 주택이 작아서 누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드물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커피숍엔 직장인, 학생, 자녀 하굣길 챙기러 나온 엄마들로 북적입니다. 이렇게 커피숍은 다방이라고 불렸던 옛 만남 장소 역할을 대체했습니다. 스타벅스 같은 유명 커피숍은 흔히 복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오후만 되면 자리가 꽉 찹니다.
물론 이런 커피숍 유행이 얼마나 계속될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뉴욕 한인 식당 <반주> 점장 레이 박 씨는 서울에 “한 골목당 커피숍 7개”가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가 됐다고 봅니다. 박 씨의 한 친구는 서울에서 유명한 커피 가맹점을 운영하는데 인근에 경쟁업체가 가게를 열면서 손님이 줄었습니다. “30m 거리에 커피숍이 두 개나 더 생겼어요. 이래선 돈을 벌 수가 없죠.”
스타벅스는 경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 브랜드라는 점입니다. 한국인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문화에 상당한 호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앤드루 헤첼 씨는 “스타벅스는 미국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젊은 층은 미국 스타일을 좋아해요.”라고 말합니다.
흔히 다국적 패스트푸드 기업은 지역 특산물을 개조해 메뉴로 삼는 전략을 쓰곤 합니다. 맥도날드가 대표적입니다. 세계음식여행협회 에릭 울프 회장은 한국 던킨도너츠가 단팥 도넛을 한국식 조미료와 섞어 대성공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반면 스타벅스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똑같은 실내 장식과 똑같은 메뉴를 고수한다는 게 울프 회장의 설명입니다. 이런 통일 전략이 때로는 해가 될 수도 있지만, 한국 소비자에게 미국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는 수지맞는 일입니다. 울프는 스타벅스 방식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먼저 자기들만의 공식을 세운 뒤 사람들에게 던지는 거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아니면 아닌 거고.”
이 방식이 한국에서는 분명 먹힙니다. 라일리 대변인은 스타벅스 전략의 우수성을 중국이나 일본에 홍보하는 데 한국 사례를 쓴다고 말합니다. “한국 스타벅스는 중국-태평양 지역에서 스타벅스가 재현하려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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