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자 주: 이 글은 NYU 스턴 경영대학원의 돌리 추(Dolly Chugh), 펜실베니아대학 와튼 경영대학원의 캐서린 밀크맨(Katherine Milkman), 그리고 콜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의 모듑 아키놀라(Modupe Akinola) 교수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입니다.
고등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교수들은 우리 자신들이 인종이나 성과 관련해서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인식이 정확한 것일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몇 년 전, 우리는 미국의 259개 대학에서 무작위로 선출된 6,500명 이상의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각각의 이메일은 다른 나라나 지역에 살고 있는 가상의 학생이 작성한 것처럼 구성했는데 이 학생들은 이메일을 받는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과의 박사 과정에 관심이 있고 조언을 받고 싶다는 내용을 이메일에 적었습니다. 이메일의 내용은 동일했고 흠잡을 데 없는 영어로 쓰였으며,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학생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이메일을 보낸 학생들의 이름은 메러디스 로버츠(Meredith Roberts), 라마르 워싱턴(Lamar Washington), 후아니타 마티네즈(Juanita Martinez), 라지 싱(Raj Singh), 그리고 창 후앙(Chang Huang) 등으로 앞선 연구들에서 실험 참가자들이 각각 백인, 흑인, 히스패닉, 인도, 그리고 중국인 이름이라고 인식해 온 대표적인 이름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실험에서는 총 20개의 이름을 사용했는데 10개의 다른 인종에 각각 남녀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인 남성, 히스패닉 여성처럼).
월요일 아침에 이메일은 발송되었고, 우리는 어떤 교수가 어떤 학생의 이메일에 답을 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몇몇 교수들은 자신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이메일을 보낸 학생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67%의 교수가 이메일에 답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한 교수 중 59%는 학생이 만나고 싶다고 말한 날짜에 만나서 조언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쁜 결과입니다. 우리는 각 학생의 범주별로 응답 비율을 계산했습니다. 학생의 인종이나 성에 따라서 교수들의 응답 비율은 크게 달랐습니다. 전공이나 학교에 관계없이 교수들은 여학생이나 흑인, 히스패닉, 인도, 혹은 중국인에 비해 백인 남학생의 이메일에 더 많은 답장을 했습니다. 이러한 편견이 가장 크게 드러난 교수 집단은 사립대학에서 높은 연봉을 주는 과에 근무하는 교수들이었습니다. 특히 경영대학이 응답률에 있어서 차별이 가장 심했는데, 백인 남학생의 경우 87%가 교수로부터 답장을 받은 반면, 여성과 소수인종의 경우는 62%만이 답장을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이 누리고 있다는 장점은 우리 실험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모범적인 소수 인종이라고 불리는 아시안들은 학계라는 맥락에서 더 호의적인 응답을 받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중국 학생들의 이름으로 보내진 이메일은 가장 낮은 응답률을 기록했습니다. 흑인 학생이 흑인 교수에게 보내는 것과 같이 같은 인종이나 같은 성을 가진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답장 확률이 더 높았을까요?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성이나 소수 인종 교수진의 비율이 높은 과의 경우 이러한 차별이 덜 했을까요? 역시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NY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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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불편합니다. 암묵적 판단을 담론에 올리기란 쉽지 않죠. 사회적 혁명이 개인적 혁명의 실패에서 단절되고 마는 것은 개인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밖에 없는 위계에서 고민을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사회는 내가 없어도 돌아간단 생각을 하게 될테고, 그것은 아직 참여하지 않은 사회적 문제들, 가령 인종문제나 소수자 문제에 대한 암묵적 판단을 시인하는 꼴이 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