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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모르는 미국의 가톨릭교

미국인들은 개종하는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퓨리서치 센터의 조사결과를 보면 미국인들의 절반 이상이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기독교 내에서 교파를 바꾼 것을 포함) 종교를 바꿨습니다. 가톨릭은 특히 개종과 관련해 신도를 잃는 종교에 속하는데, 전체 미국인의 10%가 ‘전직 가톨릭 신자’이고, 1명이 가톨릭 신도로 개종할 때마다 4명이 가톨릭을 버린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입니다. 대교구 신부들의 성폭행, 성추행 범죄 전력이 잇따라 세상에 알려지면서 ‘가톨릭의 위기’는 언론의 수사가 아닌 엄중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도들이 많았던 북동부, 중서부의 교구들에서는 특히 신도의 숫자가 꾸준히 줄어들었는데, 지난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미국 북동부 가톨릭 교구의 신도 숫자는 평균 167명 정도 줄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추세를 들여다보면 미국은 가톨릭교가 신도 숫자의 증가를 비롯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북동부, 중서부에서는 신도가 줄었을지 모르지만, 점점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따뜻한 남부, 남서부의 선벨트 지역에서 가톨릭교는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출산율이 백인, 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라티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라티노의 비중 또한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가톨릭 신자 가운데 라티노 신자들은 1/3 정도지만, 범위를 40세 이하의 젊은 신자들로 좁혀서 살펴보면 라티노의 비중이 거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2000년대 첫 10년간 신도 숫자가 무려 180%나 늘어난 애틀란타 대교구의 경우, 새로 늘어난 신자의 2/3가 라티노입니다.

라티노 신자가 늘어나면서 종교의 성격도 백인 이민자들의 후손이 주를 이루던 기존 가톨릭교의 성격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백인 중심 가톨릭과 라티노의 가톨릭은 성호를 긋는 원칙, 성수를 이용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조금씩 다릅니다. 부활절 주간에 십자가를 지고 직접 행진을 하거나, 멕시코인들의 정신적인 고향과도 같은 과달루페의 성모를 숭배하는 의식도 미국의 라티노 가톨릭 공동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됐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가톨릭의 변화는 적잖은 의미를 갖습니다. 지난 대선 때 표심을 살펴보면 전체 가톨릭의 50%가 오바마 대통령을, 48%가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에게 표를 줬습니다. 하지만 백인과 라티노 신자들을 나누어 살펴보면, 백인들은 보수적인 롬니를, 라티노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오바마를 선호했습니다. 라티노 가톨릭 신도 가운데는 낙태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있어 오바마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리버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역할을 비롯한 다른 이슈에서 이들은 친 민주당 성향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누차 지적한 빈부격차 문제에 대한 의견을 살펴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백인 가톨릭의 61%가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답한 데 반해, 라티노 가톨릭들 사이에서 이 의견에 동의하는 신자들의 비율은 무려 86%였습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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