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아 선수가 현역 선수로서 치른 마지막 대회인 동계올림픽 무대의 판정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온갖 의혹과 비난이 주말 내내 봇물 터지듯 쏟아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김연아의 연기가 훨씬 더 우아하고 흠잡을 데 없었는데,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즈는 겉보기에는 김연아의 연기가 더 예술성이 뛰어났을지 몰라도 금메달을 딴 소트니코바의 연기 구성이 더 높은 난이도로 이뤄져있어 객관적인 채점표대로 점수를 매긴다면 소트니코바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맞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문제가 여기에서 그친다면, 피겨 스케이팅의 채점 방식 자체가 먼저 비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는 익명을 요구한 피겨스케이팅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러시아 선수들을 향한 소위 편파판정이 의혹이 아닌 사실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는 국내언론과 소셜미디어, 블로그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인용되고 언급됐습니다. 다만 일부 국내언론이 썼던 “심판의 양심선언”은 정확한 소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의 원문 기사도 익명이라고 못박았지만, 제보자를 피겨스케이팅 고위 관계자(a high-ranking Olympic figure skating official)라고 했지, 경기에 참여한 심판(Judge panel)이라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위 관계자가 올림픽의 심판위원회 임원일 수도 있습니다만 기사만으로 경기에 참여했던 심판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기사 후반부에 나오는 심판은 여자 싱글 경기에는 심판으로 배석하지 않은 심판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선수생활 마지막 경기에 본인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오점이 남겨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전체 기사를 소개하는 일이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 기사를 선정했습니다. 평소 “직접적인 번역보다는 요약”이라는 원칙을 지켜온 뉴스페퍼민트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 원칙에 잠시 양해를 구하고 가능한 한 원문에 포함된 맥락을 그대로 옮겼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NP)
“심판진은 명백히 소트니코바(Adelina Sotnikova) 편으로 기울어져 있었어요. 심판들이 맘 먹으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죠. (This is what they can do)”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익명을 요구한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고위 관계자의 말입니다. 그는 피겨 스케이팅을 비롯한 체육계 전반에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심판들이 프리 프로그램에 배정된 것부터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심판들의 국적 가운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가 눈에 띄는데 이 나라들은 모두 구소련 출신이거나 사실상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나라들이고, 여기에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페어 종목 채점 과정에서 러시아와 공모해 부정을 일으켰던 전력이 있는 프랑스도 포함돼 있습니다. 국적만으로 심판의 성향을 단정지어서는 안 되겠지만, 심판들이 공정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 피겨 스케이팅 종목의 특성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우크라이나 국적의 심판 유리 발코프(Yuri Balkov)는 지난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아이스댄싱 채점 결과를 조작하려다 징계를 받았던 인물이고, 러시아 국적의 심판 알라 셰코프체바(Alla Shekhovtseva)는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연맹 사무총장의 부인입니다.
익명의 관계자는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술점수 채점단(Technical Panel)의 구성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스핀의 난이도, 점프의 회전 수와 착지시 스케이트 날의 각도 여부 등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채점단은 전체 심판 가운데 세 명인데, 이 세 명을 이끄는 총괄자가 공교롭게도 러시아 빙상연맹 부회장 알렉산더 라케닉(Alexander Lakernik)이었다는 겁니다. 기술점수 채점단의 일원이었던 핀란드 국적의 올가 바라노바(Olga Baranova)는 플라워 세레모니 직후 러시아 코치진과 포옹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말 다 한 거죠 뭐. (That completes the whole picture)”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프랑스 심판이 점수를 조작하려다 들통났던 건 각자 매긴 점수가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모두가 10점 만점에 10점을 줬는데 혼자만 6점을 줬다면 실수가 아니면 심판 볼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되죠. 그런데 현재의 채점방식은 특히 기술 부문에 상세한 채점 기준을 도입해 과정을 객관화한 대신 9명의 심판이 매긴 점수의 총점만을 공개합니다. 누가 몇 점을 줬는지는 특정 심판의 점수가 너무 크게 다르지 않는 한 공개되지 않고 그냥 진행됩니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나머지 8명 뒤에 숨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인 거죠. 때문에 미국 빙상연맹은 국제 빙상연맹 총회에 지금의 익명 채점방식을 폐지하자는 건의안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한 명 한 명이 기술 점수를 판단하는 대신 여러 명의 채점단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기본 점수와 가산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익명 채점방식이 도입된 건데, 이를 다시 예전으로 돌리자는 건 국제 빙상연맹도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여자 싱글 경기에서는 심판을 맡지 않았지만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익명의 피겨 스케이팅 심판은 소트니코바가 연기에 비해 상당히 후한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열광적인 홈 관중들의 응원이 분명 점수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동메달을 차지한) 이탈리아의 카롤리나 코스트너(Carolina Kostner)도 곡 해석(Interpretation), 안무(Choreography) 등 세부항목에서 소트니코바보다 1~1.5점은 더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오히려 소트니코바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연아에 대한 평가는 훨씬 간명했습니다. “김연아는 모든 면에서 소트니코바보다 월등했습니다. (Kim was so much better than Adelina in all aspects)” (USA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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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마지막 모든면 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자본주의로 얼룩져 있는 사회에서, 그나마 돈과 관련없이 공평하게 매겨지는 곳이 스포츠고 올림픽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올림픽 마저, 돈과 인간관계로 얽힌 것은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앗아 가는것 같습니다..
스포츠(올림픽을 포함한) 역시 자본주의의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게 된지 이미 오래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세태 속에서 '그나마' 스포츠만은 자유롭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기대가 배신당한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이겠지요....
기사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부분 기사 설명부에서 "본인의 의지로 오점이 남겨졌다"는 말씀은 약간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연아선수는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줬고, '러시아플레이션' 때문에 은메달을 딴 것이 선수생활의 오점이라고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진흙탕 속에서도 가장 예쁘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네요.
개인적으로 원문으로 먼저 접했던 기사였는데 전문 번역을 해 주시니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도 다시 볼 수 있어 너무 좋네요ㅎㅎ 저도 물론 금메달을 바라기는 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메달 색깔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내고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위대한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담담하게 결과를 수용하고 김연아 선수를 놓아주려 합니다. 어쩌면 이번 결과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더욱 인상깊게 기억하도록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은메달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의 부재와 불공정 속에서 분투한 여왕의 마지막 족적이 될 테니까요. 그녀의 인생 제 2막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