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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팡테옹은 금녀의 공간인가

프랑스의 위인들을 모셔놓은 팡테옹의 입구에는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한다(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남성을 지칭하는 “homme”로 쓰여있는 탓인지, 실제로도 이 곳에 안치된 위인 73명 가운데 여성은 두 명 뿐입니다. 그나마 한 명은 아내와 함께 묻히기를 원한 남편 덕에 이름을 올린 것이고,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아 묻힌 사람은 과학자 마리 퀴리 뿐이죠.프랑스의 대통령은 위인 한 사람을 팡테옹으로 옮겨올 수 있는 권한을 갖는데요, 상황이 이러하니 올랑드 대통령이 인물을 결정하기에 앞서 국민들의 추천을 받겠다고 하자 수 많은 프랑스인들이 여성을 추천했습니다. 20일 동안 인터넷으로 3만 여 개의 추천이 들어왔는데, 고향 마을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힌 샤를 드골을 제외하면 순위권에 든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여성들은 주로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산 반항아와 개혁가들입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뛰어난 지적, 사회적 성취는 물론, 비전통적인 연애 관계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죠. 이후 한 잡지가 5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후보 가운데서도 2명의 여성에게 가장 많은 표가 몰렸습니다. 19세기의 무정부주의자이자 교사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루이스 미셸(Louise Michel)과 평생을 터키와 이집트에서 빈민들을 도왔고 피임과 관련해 리버럴한 견해를 펼쳤던 수녀 엠마누엘(Emanulle)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노예제도에 반대한 여성주의 운동가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당대의 지성인이자 정치이론가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제르멘 틸리옹(Germaine Tillion), 댄서이자 재즈가수였던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 등이 인기있는 후보들이죠.

사실 팡테옹의 위인 과반수가 나폴레옹 한 사람의 결정으로 정해진지라, 현대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난 20년 간 추가된 인물들 가운데는 식민지 과달루페에서 저항운동을 이끈 루이스 델그레스(Louis Delgrès)와 아이티 혁명을 주도한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 등이 있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알베르 까뮈(Albert Camus)를 추가하고 싶어했지만, 까뮈의 가족들이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죠. 파스퇴르, 디드로, 몽테스키외처럼 유명하지만 팡테옹의 커트라인을 넘지 못한 남성들도 많습니다. 사실 여성이 팡테옹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주요 원인은 프랑스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1944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죠.

팡테옹은 프랑스의 국가적인 건축물이지만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정치적 좌파를 편애하는 시설이라는 이미지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여성 위인들을 추가함으로써 팡테옹이 정치적인 공간이 아닌 국가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올랑드 대통령은 2013년에 결정을 내릴 계획이었으나, 1월 또는 2월로 결정을 미룬 상태입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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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에 팡떼옹에 남자를 묻거나 여자를 묻거나 아니면 고자를 묻거나, 그건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죠. 그걸 왜 미국 신문인 NYT가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걱정할까요? 프랑스가 여성차별적인 국가라고 뒷담화를 까고 싶은걸까요? 프랑스는 여성 총리도 배출한 나라죠. 미국은 아직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남의 나라 흉 볼 입장이 아닙니다. 또 자유의 여신상도 프랑스가 미국에 독립축하의 의미로 선물했지만, 미국에선 이라크 전쟁때 프랑스가 반대의견을 표시했다고 프랑스를 욕하는 사람이 미국에 많았다죠.

    • 결정권이 없다고해서 걱정과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부도덕한 일일까요? 미국은 프랑스를 좋아합니다. 프랑스제 자유의 여신상 때문만은 아니죠.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건 현대정치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척이라도 하기 때문일까요. 그 반대로 말하는 기사 링크합니다. http://www.pewresearch.org/fact-tank/2013/12/30/which-countries-americans-like-and-dont/

    • 안녕하세요.

      이 기사를 읽고 팡테옹이라는 시설이나 프랑스 정부, 프랑스 대통령 개개인의 결정에 대한 의견을 갖는 것은 개인의 몫일 것입니다. 그러나 중앙일보나 한겨레신문이 한국이라는 국가/정부/대중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듯이, NYT에 실린 기사가 곧 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언론은 자유롭게 취재대상을 정하고 기사를 쓸 수 있는 주체이고요. 미국 정부가 나서서 팡테옹에 여성도 올려라 하고 말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입니다.

      NYT는 취재 범위가 아주 넓은 편이고, 여성의 지위는 인류보편의 인권이라는 가치와 관련있는 주제인데다 흥미로운 역사 이슈로도 볼 수 있으니 국경을 넘나드는 취재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사를 읽어보시면 내용도 팡테옹에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프랑스라는 나라나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는 내용이라기보다, 올랑드 대통령의 결정을 앞두고 배경설명 차원에서 팡테옹의 역사를 소개한 기사입니다. 최근 식민지의 저항운동가들이 이름을 올린 것을 소개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프랑스를 칭찬(?)하는 뉘앙스도 느껴집니다. 여성의 지위가 역사적으로 남성에 비해 낮았다는 것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닌데, 이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깔려있는 전제일 것입니다. 감놔라 배놔라 하는 분위기를 느끼셨다면 아마도 서툰 번역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의견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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