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컨벤션 홀의 무대에는 사무실처럼 꾸며진 세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책상 앞에 앉아있던 사무원이 수화기를 들고, 관객과 심판들은 숨을 죽인 채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입니다. 반 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일본 전화받기 대회”입니다. 올해는 무려 만 이천 여 명의 도전자들이 지원해, 60명의 결승 진출자가 가려지기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평가 기준은 목소리 톤과 크기, 발음, 빠르기, 억양, 어휘의 사용, 예절 등 입니다. 적절한 침묵과 예의바른 맞장구의 타이밍 같은 부분도 세세하게 평가됩니다. 이메일과 문자의 시대에 전화라는 통신 수단은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지만, 전문 콜센터 산업이 7천억엔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대회 주최측은 최근 이 대회가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에 대해 젊은 일본인들이 전화 예절을 잊어가는 현실 속에서 그 중요성이 오히려 더 부각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일본의 사무실에서 전화 응대란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입니다. 이른바 O.L.(office lady의 약어)로 불리는 하위직 여성 사무원들에게 “높은 분”들이 선호하는 밝고 높은 목소리로 전화를 잘 받는 것은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일본 아마존에서 수 십 종씩 검색되는 전화 응대 에티켓 관련 도서도 여성들을 타겟으로 한 것이 많고, 전화받기 대회의 참가자 가운데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물론 시대가 변화한만큼 참가자들의 전략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26세의 결승 진출자는 “만화 캐릭터 같은 말투를 쓰지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남성 결승 진출자 4인 중 하나인 에어컨 제조업체 사원은 자신의 회사에서 지난 5년 간 관리직 여성의 숫자가 50% 이상 늘어났다고 전했죠. 일본에서는 1986년 양성평등법이 제정된 이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일터에서의 남녀 차별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관리직 기준 여성 비율은 11%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화 응대가 여전히 여성의 일이라는 의미죠. 대회 후 사무라이쇼를 곁들인 성대한 시상식에서는 NTT 콜센터에 근무하는 여성이 올해 전 일본 전화받기 챔피언으로 등극했습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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