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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세상을 떠나다

넬슨 만델라의 모든 업적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지는 두 가지를 우선 꼽아보겠습니다. 첫째는 억압에 맞서면서도 강인함과 넓은 도량,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입니다. 27년 간 그를 감옥에 가둔 자들이 편견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만델라는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인내심과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죠. 당시 함께 생활한 교도관들은 그 누구보다도 만델라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는 고약한 편협함의 대명사였던 남아공의 이미지를 나라를 피부색과 관계없이 누구나 존중받으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무지개빛 국가로 바꾸는 기적같은 일을 해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남아공의 현실이 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가 제시한 이상이 얼마나 고귀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많은 자기모순을 갖고 있었습니다. 천재도 아니었고, 자신도 누누히 말했던 것 처럼 성자도 아니었죠.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카리스마를 보인 타고난 리더였습니다. 인종 차별이 법으로 보장된 나라에서 자신의 신념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품위와 유머감각을 유지했죠. 온갖 고초를 치르면서도 백인에 대한 차별과 복수를 입에 담은 적이 없었기에, 전 세계인들에게 정의와 관용의 상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깊이 생각할 줄 알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줄도 아는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그가 석방되었을 때만 해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많은 당원들이 오랜 후원자인 소련의 도그마적 이념에 여전히 깊이 경도되어 있던 시절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웨스트민스터식 의회민주주의도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죠. 하지만 만델라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생각을 정리한 끝에 개혁은 하되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남아공 국민들, 무엇보다도 가난한 흑인들에게 더 나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결과 오늘날 남아공의 모습은 1994년에 비해 훨씬 나아졌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받는 사회가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흑인 중산층이 등장했고, 주기적인 선거가 치러지고 있으며, 언론은 활발하고, 법과 제도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만델라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남아공 사회는 실망스러운 두 명의 지도자를 겪었습니다. 경제성장은 지지부진하고, 정치판의 부패와 권위주의, 포퓰리즘은 심해졌습니다. 만델라가 그토록 혐오했던 인종간 반감이 공적 담론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실업과 빈곤, 빈부격차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성역에 가까운 만델라의 아우라덕에 근근히 입지를 지키고 있는 ANC도 부패와 비효율성으로 인해 비난을 사며 경쟁 정당들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ANC의 실패가 만델라의 잘못은 아니지만, 만델라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신의 뒤를 이은 지도자들에게 강력하고 단호한 조언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외교 분야에서는 기존의 우방들에게 지나치게 의리를 지킨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들이죠. 하지만 그가 평생 이룬 거대한 업적 앞에서 이런 아쉬움들은 별 것 아닌 문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존경할 만한 구석을 한 몸에 갖춘 우리 시대의 인물로, 넬슨 만델라 외에 다른 이름을 떠올리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훌륭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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