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WTO(세계무역기구)의 다자간 무역협상 도하 개발 의제(DDA, 일명 도하라운드) 회의가 열립니다. 지난 2001년 시작된 도하라운드는 회원국들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끝에 타결을 보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때문에 발리 회의에 임하는 참가국들은 극적인 대타협보다는 협상 의제를 구체화하고 협상 서명국의 숫자를 줄여서라도 실질적인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관세 정책을 완화해 장벽을 낮추고 국가간 무역을 촉진하자는 단순한 의제마저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식량안보’를 부르짖고 있는 인도의 강력한 반대입니다.
전 세계 극빈층의 1/3이 인도에 있습니다. 인도는 다자간 협상이 벌어질 때마다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의 기수를 자처해 왔습니다. 최근 곡물을 비롯한 식량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도 정부는 식량안보를 가장 중요한 국가 의제로 설정하고, 자국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양을 크게 늘렸습니다. 이내 과도한 보조금 지급은 WTO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었고, 인도는 WTO가 기준을 상향 조정하지 않는 이상 빈곤국의 식량 위기로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한 자유무역 촉진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인도 국내 정치 상황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싱(Manmohan Singh) 총리는 도하라운드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간디(Sonia Gandhi)가 이끌고 있는 여당 국민회의당(Congress Party)은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도 뿐 아니라 빈곤국들을 자유무역의 험난한 파고로부터 막아 식량안보를 지켜낸다는 주장은 당장의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을 안심시키기에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발리에서 논의될 사안이 연간 75조 원 규모의 경제효과를 창출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도하라운드가 사실상 폐기되면서 선진국들은 양자간 FTA 체결이나 지역 블록간 무역협정을 잇따라 체결하며 WTO 질서를 우회하거나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무역 질서의 주도권을 되찾고자 하는 WTO는 빈곤국, 개발도상국들이 손 잡기에 매력적이면서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구라는 점도 식량안보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인도 정치권이 눈여겨봐야 할 사실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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